※ 이 글은 <사무금융 우분투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작성한 『고령자 노동시장 분석과 정책과제 연구』 (2024) 보고서의 내용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한국 노동시장의 인구구조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추세 중 하나는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다. 2013년과 2023년을 비교했을 때, 전체 고용률이 59.5%에서 62.6%로 3.1%포인트 증가하는 동안, 55세에서 64세 준고령자 집단은 5.6%포인트(64.3%, 69.9%), 65세에서 79세 고령자 집단은 7.9%포인트(35.2%, 43.1%)로, 나이가 많을수록 훨씬 더 빨리 늘었다. 인구 감소 시대에 복지 부담이 커지는 조건에서, 이렇듯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가 증가하는 건 어쩌면 긍정적인 신호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고령자가 일을 통해서 경제·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충분히 돼 있는가는 의문이다. 20년 가까이 다양한 정책 개입이 이뤄졌음에도, 고령자 노동시장은 활발한 참여와 극심한 불안정이 공존하는 딜레마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구조를 혁신하는 건 우리 국가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중요한 과제다.
고령자가 경험하는 ‘고용·노동 절벽’
노동 관련 국가통계는 특정 연령을 기점으로 노동조건이 급격히 저하하는 구조적 단절 현상을 명확하게 확인해준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2023년 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15~29세 집단(47.5%)과 55~64세 집단(49.9%)의 비정규직 비율은 비슷하지만, 일하는 고령자(65~79세 집단)는 십중팔구가 비정규직이다(84.0%). 또한 같은 자료로 시간당 임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일하는 고령자의 절반 가까이가 저임금 계층이고(46.0%), 고용보험 미가입자는 네 명 중에 세 명 이상이다(77.1%).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하면 전체 근로자 중 저임금 계층과 고용보험 미가입자 비율은 14.0%와 23.0%이고, 55~64세 집단은 각각 13.9%와 21.8%가량이다. 요컨대 정년퇴직 연령 이후 일하길 원하는 고령자들에게는 제도적인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였으며 임금이 낮은 열악한 일자리가 주로 제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한편으로, 다양한 이유로 계속 일하길 원하는 고령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2013년에는 65~79세 고령 경제활동인구 9명 중 1명이 구직활동을 했는데(11.7%), 2023년에는 5~6명 중에서 1명가량이 구직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18.6%). 그렇지만 노동자가 자기 능력과 숙련을 더욱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조기에 이탈하는 경향은 여전하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고령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연령은 2013년 56.8세에서 2023년 55.9세로 약간 빨라졌다. 55~64세 집단의 경우에는 두 시기 모두 49.4세로 같았다. 2017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개정으로 사업체 정년퇴직 연령이 60세 이상으로 의무화됐지만, 우리나라 노동자 상당수는 정년이 되기 전에 비자발적 이유로 생애 주된 일자리를 떠난다. 숙련과 의지를 갖춘 노동자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로부터 이탈하는 상황은 개인에게도 불행이지만 사회 전체의 생산성 손실로 이어진다.
정책의 진화, 더 빠르게 변하는 현실
이런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적 틀은 1990년대 초 마련됐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정책 과정이 실질화된 건 2000년대 후반 들어서다. 이를테면 1991년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한 최초의 법률로서 고령자고용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고령 노동자에 관한 권고’가 제시하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정년제도 설정에서 차별의 금지 △퇴직과 연금 수령 사이 시기의 소득 보호 등과 관련된 내용이 제대로 포함되지 못했다. 이후 이 법률은 2008년 개정을 통해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를, 2016년 개정으로 정년 연령 60세 이상 의무화를, 2019년 개정으로 일정 규모 사업체에서 재취업지원서비스 제공 의무화를 규정했다. 이로써 글로벌 스탠더드에 기반한 규범적 체계가 어느 정도 구축됐다.
또한 정부는 고령자고용법 등에 기초해서 다양한 정책계획들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정책 과정은 대략 2000년대 후반 시작됐으며, 5년을 주기로 기획-집행-평가-환류를 거쳐 더 정교해진 계획이 출범하고 있다. 예컨대 고령자고용법에 기초해 2008년 추진된 ‘1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은 정책서비스 인프라를 건설하고 기존 고용서비스를 일괄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초점이 있었다. 그러나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적용되는 4차 기본계획은, 양뿐만 아니라 질도 고려한 일자리 창출, 고령자가 처한 상황에 맞춤한 취업지원과 직업훈련의 제공, 일하는 환경과 방식의 개선 등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들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한국의 고령화 추세에 충분히 대응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상당수 한국의 고령노동자는 일찍부터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난 후 소득 부족과 빈곤에 쫓겨, 자신이 보유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생애 전망과 관련이 적은 질 낮은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이러한 고령 노동시장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기 처방을 넘어선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구조적 전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추진하는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의 치열한 논의 끝에 형성된 합의가 그와 결합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노동계는 사회적 대화의 핵심 주체로서 다음 세 가지 과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법정 정년 연장이라는 단일 목표를 넘어 고용연장 모델의 다각화에 집중해야 한다. 법률 개정의 효과가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에 한정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당면 과제는 산업 및 직종별 특성에 맞는 계속고용 모델을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현장에서 실질적 사례들이 축적될 때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을 연계하는 법·제도 개선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둘째, 노동계가 주도해 자신의 현장에서부터 ‘표준 노동자’ 중심의 일터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선진국 따라잡기 산업화를 통한 고도 경제 성장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한국의 일터는 청·장년 남성, 전일제라는 표준을 중심으로 구축돼왔다. 즉,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이 일반적인 기준이었다. 이제는 고령자, 돌봄 책임이 있는 노동자, 장애인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생산성에 이바지하며 인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유연한 직무 및 작업 환경을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됐다. 이는 기업의 자율에만 맡길 수 없다. 당사자들의 정책 참여를 통해 사회적으로 강제하고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와 경영참여를 통해 이를 주도해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활성화와 사회안전망 확대를 위한 제도 형성 과정에 노동계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현재 진행 중인 평생직업훈련, 재취업지원서비스,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 등의 정책 논의는 고령노동자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삶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당사자를 대변하는 노동계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형성 중인 제도와 정책체계에 노동 친화적 관점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동계가 나서야 한다. 서두에 언급했듯,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는 위기이자 기회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데 우리 사회 모두가 나서야 한다. 노동계가 앞장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