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난 15일 ‘서울 시민의 결혼과 가족 형태의 변화’ 보고서를 발표했다. 다음날 거의 모든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방점은 언론사마다 조금씩 달랐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서울 황혼이혼, 20년새 두 배 늘었다’는 제목을 달아 ‘황혼 이혼’에 초점을 맞췄다. 조선일보는 ‘고령 가구 첫 30%대, 나홀로족도 40%’라는 제목을 달아 65세 이상 고령 가구와 1인 가구의 증가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일보도 1인 가구 증가에 초점을 맞췄지만, 외국인 배우자와 사는 가구 증가에도 방점을 찍었다. 지난해 결혼한 서울 시민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라는 거다.
국민일보는 ‘서울시민 결혼 2년 연속 늘어’라는 제목으로 결혼 건수가 늘어나고 이혼이 감소해 저출산 해소의 길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혈연이 아닌 연인·친구 등으로 이뤄진 ‘비친족 가구’가 8년새 2배나 늘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혼인과 혈연, 입양 등 법적 가족이 아닌 다른 성인과 살며 생계와 주거를 함께하는 가구의 급증에 주목했다. 2016년 서울의 비친족 가구는 6만 가구였는데 2024년엔 12만1천 가구로 배 이상 많아졌다.
연구보고서 하나를 놓고도 이처럼 서로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이런 게 여론의 다양성이다. 미디어 소비자는 같은 소재를 취재했지만 서로 다른 결과를 내놓은 언론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뉴스를 찾기 마련이다.
황혼 이혼과 고령 가구, 1인 가구가 늘어난다는 소식은 이미 뉴스도 아니다.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나 익히 아는 얘기를 굳이 뉴스로 소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국제결혼이 늘어난다는 얘기도 뉴스가 아니다. 다만 지난해 결혼한 부부의 10%가 국제결혼이라는 팩트만 새로울 뿐이다. 국제결혼에 방점을 찍었으면 반드시 뒤따라 오는 다문화 가정을 둘러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함께 취재해 주길 원한다.
한겨레가 ‘비친족 가구’의 증가에 주목했다면, 그 원인과 미래 전망도 함께 보도하길 원한다. 거주 비용이 너무 높아 임시방편으로 서울만 다른 도시에 비해 ‘비친족 가구’가 늘어나는지, 아니면 비혼 동거나 소수자 등 아직 현행법 밖에 있는 가족이 전국에서 늘어나는지 후속보도했으면 한다. 후자라면 해결 대안도 내놓는 게 좋겠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언론 소비자의 요구는 이처럼 섬세하고 예민하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까다로운 독자의 구미를 충족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정치인 입만 쫓아다니는 기자가 여전히 판친다.
서울신문은 16일자 정치면(8면)에 “윤, 수감 생활 중 ‘성경 시편’ 집중해서 읽어”란 제목의 2단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 작은 제목은 “변호인들 ‘원래도 독실한 신자’”다. 기사에 등장하는 유일한 화자는 윤석열 변호인이다. 반대쪽 얘기에도 귀기울이는 척 구색 맞춘답시고 기사 맨 마지막에 “반면 일각에서는 ‘보수 개신교계 지지자 호소용’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고 썼지만, 익명의 숲으로 숨었다. 그 ‘일각’이 누구인지도 드러내지 못하는 게으른 기사다. 국민 삶과 아무 관련 없는 ‘활자 공해’다. 너무 쉽게 기사 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