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철 철도노조 기획국장

2005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출범 이후 지금까지 모두 11명의 사장이 임명됐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잦은 열차 사고 등 철도 안전 문제와 관련된 책임으로 중도 퇴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8월 사임한 한문희 전 사장 역시 청도 무궁화호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사고가 날 때마다 사장이 교체되는 악순환만으로는 현장의 위험을 줄일 수 없다.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구조는 바뀌지 않은 채 사고는 반복해 왔다.

지난해 구로역에서는 전차선을 점검하던 노동자 두 명이 열차에 치여 숨졌고, 올해 8월 청도역 인근에서는 점검 작업을 하던 노동자 두 명이 사망하고 네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른바 ‘상례작업(운행 중 선로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계속되는 한, 달리는 열차와 사람의 충돌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인력 공백 1천566명, 구조적 사고 위험

철도의 안전은 기술 시스템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설비를 점검하고 시설을 관리하는 노동자의 충분한 배치가 안전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지난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은 철도공사 인력 구조를 정면으로 흔들었다. 코레일은 이 지침에 따라 정원을 722명 줄였고, 신규 사업에 필요한 844명도 충원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현장에서 체감되는 인력 공백은 1천566명에 달한다.

철도노조는 이미 2019년 밀양역 사고 이후 시설 분야의 전면 교대제 전환을 요구해왔다. 열차가 다니는 낮 시간대에는 차단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간 상례작업을 없애고 야간에 차단작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레일 역시 필요성을 인정했으나, 정부의 효율화 정책 기조 앞에서 실행은 미뤄졌다. 그 결과, 위험이 예고된 채로 남겨진 주간 상례작업에서 다시 참사가 발생했다.

땜질 처방으로 반복 막을 수 없다

2019년부터 2024년 7월까지 5년간 코레일 현장노동자의 부상·사망 사고는 409건에 달한다(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정점식 의원실, 한국철도공사 제출 자료). 사고 이후 대응은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 구로역 사고의 경우 사고 직후 인접선 안전조치가 일부 공정에 한해 강화됐지만 전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조차 사고 원인을 작업자 과실로 돌리며 구조적 원인 규명을 회피했다. 사고마다 임시 대책은 나왔지만, 다른 구간에서 유사 사고가 재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고의 뿌리는 비용 절감을 최우선으로 한 혁신가이드라인이다. 시설 유지보수뿐 아니라 차량 정비, 역무, 관제 등 철도 안전과 직결되는 핵심 업무가 모두 효율화의 이름으로 감축 대상이 됐다. 정규 인력이 빠져나간 자리는 외주와 위탁으로 채워지고, 그 결과 책임은 분산되면서 안전관리의 구멍은 커졌다. ‘위험의 외주화’가 반복되는 배경이다.

안전 위한 최소한의 조건

철도는 앞으로 더 큰 역할을 요구받게 된다. 대통령 공약인 고속철도 통합, 지역 간 네트워크 확대,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의 활용까지, 철도의 책임과 가치는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 전제는 명확하다. 철도가 안전하지 않으면 국민은 이용하지 않고, 노동자는 일할 수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숫자 맞추기식 인력 감축이 아니라 전체 안전체계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상례작업을 전면 폐지하고, 교대제를 개편해 차단작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안전 관련 핵심 업무는 외주화가 아니라 정규 인력 확충을 통해 책임 있게 수행돼야 한다. 고속철도의 통합적 운영을 통해 안전관리 이원화의 위험을 해소하는 것도 시급하다.

철도의 미래는 기술 혁신이 아니라 안전 위에서만 가능하다. 달리는 열차와 사람을 분리하는 것, 충분한 인력을 충원하는 것, 외주화된 책임을 되돌려 제자리에 놓는 것, 그것이야말로 반복된 사고를 끝내고 국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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