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노사정위원회와 구분하는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노사 세 명씩으로 구성되는 계층위원을 둔다는 점이다. 양대 노총 위원장과 한국경총·대한상의 회장이라는 조직대표로 한정되던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에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 대표를 더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지만 동시에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표성을 높이는 조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노동시장에서 확대되고 있는 임금·근로조건의 양극화를 줄이려면 의사결정 과정에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했다.

사회적 대화가 노동정치의 일환이라면 그것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몫 없는 이들에게 정치적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 곧 을(乙)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을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 한국 민주주의의 병리성을 드러내는 개념이다.(진태원, 2017, <을의 민주주의>) 그 중심에 노동시장의 ‘을’이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존중사회 구축을 지향했다면 사회적 대화에서 을을 주체로 내세워야 했다.

사용자쪽 계층위원 선임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경총과 상의라는 전통적인 경제단체 외에도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그리고 소상공인연합회와 같은 관련 단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소상공인 단체의 대표들이 사용자위원으로 참여하게 되면 대표성과 책임성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었다.

추천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경총과 대한상의가 추천과정에서 법정 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를 건너뛰고 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을 추천한 것이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가 반발하고 국회까지 논란이 확산됐다. 결국 경총과 상의가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으로 후보를 교체·추천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사용자쪽 계층위원으로서는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그리고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이 선임됐다.

노동자쪽 계층위원 후보를 선임하다

노동자쪽 계층위원을 선임하는 일도 겉보기로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전국적 규모의 총연합단체인 노동단체가 추천한 청년·여성·비정규직 근로자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경사노위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방식이었다(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 시행령 2조).

양대 노총과의 실무협의도 원활했다. 이번에는 한국노총이 여성·청년대표를,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대표를 추천하되 다음번에는 역할을 바꾸기로 합의했다. 막판에는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대표를 내부인사로 추천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비정규직 조직으로서는 민주노총이 가장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경사노위는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합의한 ‘외부인사 선임’ 원칙을 근거로 이를 거부했다. 민주노총은 결국 조합원이 아닌 인사로 비정규직 대표를 추천했다. 다만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가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는 한국노총이 세 명 모두를 추천하는 형식이 됐다.

양대 노총 바깥에서 계층위원을 뽑기로 했지만 인재풀은 좁았다. 양대 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노조에서 계층위원이, 그것도 개인 자격으로 나와야 한다는 사실도 석연치 않았다. 독립노조가 취약노동자의 목소리를 더 잘 대변한다는 보장도 없었거니와 개인으로서 대표성과 책임성 문제를 풀기도 어려웠다.

최종적으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추천한 세 명을 한국노총 이름으로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청년대표는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여성대표는 나지현 여성노조 위원장, 그리고 비정규직 대표로는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이 맡았다. 청년유니온과 여성노조는 독립노조였고 비정규센터는 노동단체였다.

계층위원제에 발목 잡힌 경사노위, 후속 논의는 없었다

청년·여성·비정규직 노동자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참고할 규범도, 축적된 경험도 없었다. ‘비정규직,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의 참여 확대는 이미 2013년에 제기됐지만(엄현택, 2013. ‘사회적 대화 발전 방향’) 관련 연구가 진행된 적도 없었고, 해외사례도 찾을 수 없었다. 계층위원제가 제대로 설계됐는지를 알려면 시행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쪽 계층위원 선임과 관련해 첫 번째 쟁점은 양대 노총 소속 조합원이 계층위원이 될 수 있는가였다. 양대 노총 소속을 배제한다면 개인 추천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는 양대 노총 소속 조합원을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양대 노총이 그간 미조직·취약노동자의 이해 대변에 소홀했다는 사실이 계층위원제를 도입한 취지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양대 노총도 어렵사리 동의했다.

계층위원 후보에서 양대 노총 조합원을 배제한다는 사실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계층위원은 개인 자격으로 전체 노동자를 대표해 사회적 결정에 참여한다. 그렇다면 이 경우 대표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더욱이 민주노총이 참가하더라도 조직대표는 양대 노총 위원장 두 명인 데 반해 계층위원은 세 명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계층위원은 조직대표의 입장과 무관하게 본위원회 소집을 거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본위원회에서 노동계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는 사회적 주체(social actors) 간 대화라는 사회적 대화의 본질을 흔드는 일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계층위원제를 도입한 본래 취지는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취약노동자의 참가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사회적 대화는 본위원회가 아니라 의제별・업종별 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이들 위원회에 계층위원의 참가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운영위원회에도 들어가지 못하니 경사노위 운영에 개입할 통로도 없다. 결국 계층위원은 본위원회 위원이라는 이름만 그럴듯할 뿐, ‘허울 좋은 하눌타리’에 불과했다. 계층위원제가 실제로 취약노동자의 정책참가를 확대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사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설계할 당시만 해도 계층위원의 대표성이나 책임성·규모·역할이나 선임방식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도입 여부가 쟁점이었을 뿐이었다. 경사노위가 2019년 ‘탄력근로제 사태’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 빌미가 됐던 계층위원제가 논란이 되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사회적 대화의 발전을 둘러싼 논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계층위원제는 여전히 논의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가 끝을 보지 못했던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계층위원제가 지닌 한계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계층위원제 개선이 논의에서 빠진다면 사회적 대화 발전에 관한 논의는 허공에 종주먹질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사노위 구성이 마무리되면서 남은 과제는 첫 본위원회에서 어떤 안건을 다룰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었다. 경사노위가 노사정대표자회의 및 의제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것이나 경사노위 출범 이후 각급 위원회에 민주노총의 참여를 권고하는 결의문 채택은 일종의 요식행위였다. 참여 권고를 민주노총이 받을 리는 없었다.

쟁점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사회적 대화의 의제로 올릴지 여부였다. 2018년 2월,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될 때부터 제기된 문제였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응해 노동시간 유연화를 사회적 대화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이 촉발한 야당과 사용자의 반발은 탄력근로제 논의를 “무른 땅에 말뚝 받듯” 기정사실화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을 줄이는 완충재로 탄력근로제가 동원된 것이었다. “탄력근로제 논의가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tjpark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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