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4년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학술대회 미디어이론과현장 연구회 발표문에 기초해 정리했다. <편집자>
한국의 다수 방송사가 ‘비정규직의 백화점’이라 불리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터져 나온 방송사 내 다양한 비정규직 직군들의 부당한 차별 철폐 요구는 관련 부처의 합동 대처 계획을 끌어냈다. 방송작가와 스태프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산별노조에 가입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방송산업 산별노조인 언론노조는 직군·직종에 차별 없이 직접 가입이 가능한 지부를 만들고 공제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2020년을 기점으로 보면 비정규직 피디·CG디자이너(문자발생요원)·아나운서 등이 오랫동안 일했던 방송사를 상대로 법원에 근로자성 인정과 그에 따른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했다. 근로자성 인정과 정규직 전환 등 방송 비정규 노동자의 요구는 십수 년간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러한 목소리가 분출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의 배경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봐야 방송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를 풀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방송사의 노동자, 콘텐츠의 노동자
여기 한 방송사에서 일하는 두 명의 피디가 있다. 한 명은 공채로 입사한 박 피디고 다른 한 명은 비정규직으로 10여 년간 일해온 김 피디다. 두 명 모두 시사교양 피디지만 하는 일은 다르다. 박 피디는 편성에 따라 주어진 프로그램 하나의 제작을 맡는다. 인사 발령이 나면 한동안 제작이 아닌 비제작 부서에서 일하다 다른 프로그램을 맡는다. 김 피디는 박 피디와 같이 프로그램을 제작하지만 포맷이 정해진 협찬물도 제작한다. 두 피디가 함께 맡은 프로그램이 개편 때 폐지되면 박 피디는 다른 부서로 가거나 토크 프로그램 등을 맡을 수 있지만, 김 피디는 바로 계약해지 될 수 있다. 그래서 김 피디는 방송사 일을 하면서도 종종 다른 회사나 공공기관의 홍보물을 만든다.
업무 지시나 정기적인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두 피디 모두 근로자로서의 종속성을 갖는다. 그러나 종속의 대상은 다르다. 정규직 박 피디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라는 콘텐츠가 아닌 방송사에 종속된 노동자이며, 비정규직 김 피디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콘텐츠에만 종속된 노동자다. 따라서 박 피디는 SBS나 tvN 등 방송사 소속으로서 정체성을 부여받지만, 김 피디는 오랫동안 만들어 온 시사교양, 혹은 협찬물 제작 피디라는 콘텐츠로부터 정체성을 얻는다. 회사에 종속된 박 피디와 콘텐츠에 종속된 김 피디는 전문직주의를 내거는 미디어 노동의 자율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율성 제약은 높은 수준에서 방송사의 프로그램 편성 전략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각각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노동의 자율성은 담당 피디나 팀장 등 회사에 종속된 정규직에게만 국한된다.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 피디·작가, 촬영·음향·조명 등 콘텐츠에 종속된 비정규 노동자에게 자율성이란 각자가 오랫동안 맡아온 콘텐츠 장르나 포맷에 종속된 자유일 뿐이다.
방송사에 종속된 노동자와 콘텐츠에 종속된 노동자라는 차이는 노조 가입에도 걸림돌이 된다. 시사교양 피디라는 이름으로 입사한 박 피디는 프로그램 제작뿐 아니라 다양한 업무를 인사 발령에 따라 수행하기 때문에 노조를 통해 요구할 임금·단체협약의 조건들은 다른 직군 정규직들과 공통 분모를 갖는다. 그러나 콘텐츠에 종속된 박 피디가 요구하는 편당 제작비 인상, 노동시간 단축, 고용안정은 수시로 바뀌는 편성을 고려할 때 임단협 안건이 되기 어렵다. 게다가 박 피디와는 다른 비정규직 피디·아나운서·작가들은 지금 일하는 방송사를 더 나은 조건의 방송사로 이직하기 위한 경력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노동 관련 법령으로 다양한 직무에 종사하는 방송 비정규 노동자의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는 주장은 법리와 노동 현장의 간격을 간과하기 쉽다. 한 사업자, 즉 회사에 경제적이고 인격적으로 종속된 노동자라는 규정에는 콘텐츠에 종속된 비정규 노동자가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비정규 노동자가 지금 하고 있는 직무를 언제까지 할지 모른다. 방송사를 나가 1인 사업자로 제작사를 만들거나 아예 다른 직업으로 바꾸려는 이들도 있다. 정규직을 바라는 노동자와, 정규직으로서 사회보험이 공제된 급여를 받기보다 단 몇 년이라도 더 많은 급여를 원하는 노동자가 뒤섞인 노동시장에 이들의 공통된 요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복잡함이 방송사뿐 아니라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조가입을 권하지 않는 명분이 된다.
미디어 콘텐츠, 상품이 되다
같은 노동자지만 김 피디와 박 피디의 차이는 똑같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실시간 본방송 편성 중심의 방송사와 CJ ENM과 같은 미디어 자본의 차이로 확장될 수 있다. 흔히 레거시 미디어라 불리는 MBC나 SBS와 같은 방송사가 제작한 콘텐츠는 엄밀한 의미에서 상품이라 부르기 어렵다. 콘텐츠가 거래되는 시장이 협소했던 시기에 이 방송사들에게 콘텐츠란 광고·협찬 및 부대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콘텐츠 자체 거래로부터 얻는 수익은 지금도 방송사의 전체 매출에서 낮은 비율을 차지한다. 더 중요한 점은 방송사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매출뿐 아니라 제작·보도·경영·행정 등 다양한 부서로 구성된 조직의 생존을 위한 매출을 필요로 한다.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라는 말은 콘텐츠 제작 역량의 저하뿐 아니라 큰 조직 유지를 위한 수익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콘텐츠를 시장에서 거래할 상품으로 생산하는 CJ ENM과 같은 미디어 자본이 있다. 이 자본에게는 콘텐츠 편성을 통한 광고·협찬 등의 수익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가 상품으로 기획되고 유통된다. 이 자본은 콘텐츠 저작권 확보를 위한 크리에이터 양성 및 영입, 제작 예산을 충당할 영업, 국내외 콘텐츠 방영권 판매뿐 아니라 OST·커머스 등을 통한 예상 수익까지 모든 과정을 현금 흐름에 충실하게 기획한다. 설령 PP와 같은 실시간 방송에 편성하더라도 이는 콘텐츠 상품이 출시됐다는 홍보 이상의 의미는 갖지 않는다. 드라마의 시즌 제작 방식은 이렇게 한 시즌의 콘텐츠가 다음 시즌 제작비를 일정 수준 충당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콘텐츠 제작을 위한 콘텐츠 판매는 레거시 미디어와 전혀 다른 자본 본연의 가치증식 과정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 자본 내 제작팀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이 경쟁에서 낙오하는 이들은 퇴직까지 감수한다. 기획과 사업에 최적화한 미디어 자본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정규직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콘텐츠 단위별로 연출부터 행정 및 홍보까지 모두 프리랜서, 계약・파견직, 용역회사에 맡기기 때문에 본사 정규직 규모는 레거시 미디어보다 적고 인건비 비중은 낮으며 주주에 대한 배당은 높다.
투쟁할 것인가, 협력할 것인가
서두에 언급했던 PD·아나운서·CG디자이너 등 비정규 노동자들이 근로자성 인정에서 승소하고 복직을 위한 투쟁에 나선 배경에는 지금까지 말한 미디어 자본 시장의 변화가 지역 지상파 방송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디어 시장은 회사의 생존을 위해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레거시 미디어를 콘텐츠 상품을 투자·생산·배급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구조로 재편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방송사에 종속된 노동자보다 콘텐츠에 종속된 노동자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근래 불거진 방송 비정규직의 직무를 보면 주로 시사교양물이나 뉴스에 한정된 콘텐츠 종속성을 보여준다. 특히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받기 어려운 지역 방송일수록 법률로 정한 자체 편성 비율조차 채우기 힘겨운 상태에 놓여 있다.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콘텐츠까지 넷플릭스를 위시한 글로벌 미디어 자본 주도의 새로운 노동시장에 편입됐다.
이런 콘텐츠 장르에 이전부터 종속된 방송 비정규 노동자는 SBS나 tvN과 같은 방송사의 정체성보다 넷플릭스 제작 콘텐츠 참여 이력을 중요한 경력으로 여기게 된다. 이 경력은 이들에게 정규직보다 리스크가 크고 수익은 높은 일자리로 이동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시사교양이나 보도 콘텐츠에 종속돼 온 노동자들에게 미디어 자본이 형성한 노동시장은 진입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지역 방송의 정규직 노동자 또한 이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편성에서 줄어든 자체 제작 콘텐츠의 비중은 과거 비정규 노동자들이 하던 제작 업무를 정규직이 이어 받게 만들고, 비정규직에게는 계약해지(해고) 통보가 내려진다. 설령 이들이 법원에서 승소해 근로자성을 인정받아도 회사의 답변은 ‘더 이상 일할 자리가 없다’일 것이다.
미디어 자본이 주도하는 노동시장 형성은 결국 특정 콘텐츠에 국한된 고립된 노동시장을 만들었다. 이미 시작됐지만 이렇게 고립된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 노동자의 다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르기우스의 매듭을 잘라낸 칼과 같은 해법은 없다. 해법 제안보다 방송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서로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공감하는 게 우선이다. 고립된 노동시장에서 각자도생을 위한 투쟁을 이어 갈지, 아니면 상품이 될 수 없는 콘텐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협력할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