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불법하도급 근절을 이야기하는 정부가 반갑다. 꾸준히 불법하도급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주장한 건설노조가 <매일노동뉴스>에 현장 건설노동자가 생각하는 근절 방안을 보내왔다. 세 번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한종탁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기계지부장(콘크리트 펌프카 노동자)
▲ 한종탁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기계지부장(콘크리트 펌프카 노동자)

새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하도급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불법 구조의 가장 큰 피해자인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처지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불법 물량도급 업자’라는 잘못된 낙인 속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고통을 감내해왔다.

건설기계 노동자, 특히 콘크리트 펌프카 노동자는 결코 업자가 아니다. 우리는 건설사와 계약을 맺고 장비를 임대하지만, 동시에 그 장비를 직접 조종해 현장에서 노동을 수행하는 주체다. 임대와 노동이 결합된 독특한 고용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뒷받침은 없었고, 원청과 건설사의 책임 회피 속에서 불법적 관행이 굳어졌다. 그 결과 우리는 노동자가 아닌 업자로 분류되며, 사회적 보호망에서 배제되어 왔다.

문제는 오랜 관행 속에서 불법이 마치 합법인 듯 굳어졌다는 점이다. 콘크리트 펌프카 노동자들은 수십 년 동안 불법을 불법이라 말할 수조차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세뇌당한 것처럼, 물량도급이라는 부당한 구조를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아 왔다. 타설 공정에서 레미콘 물량에 따른 비용이 책정되고 이를 한 명이 수령한다. 물량에 대한 대가를 콘크리트 펌프카 노동자들과 타설공들에게 나눠준다. 이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다. 또한 건설노동자가 근로계약을 맺지 못하고, 건설기계 노동자는 임대차계약을 하지 못하는 불법이다.

그러나 불법이 오래됐다고 해서 정당성을 가질 수는 없다. 오히려 방치된 불법 관행은 임금 체불과 안전사고, 과도한 경쟁을 낳아 노동자들의 삶과 생존을 위협해 왔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건설사에게는 이익을 보장하지만, 노동자에게는 고통만을 남긴다. 원청의 책임은 흐려지고, 임대료는 깎이며, 노동의 대가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기름값과 유지비, 고장에 따른 손실까지 떠안아야 하고, 심지어는 사고의 위험마저 홀로 감당해야 한다. 이렇게 왜곡된 구조 속에서 노동자는 존재하지만, 노동자의 권리는 지워져 왔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새 정부가 진정으로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근절을 원한다면, 건설기계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분명히 보장해야 한다. 건설기계를 단순한 장비가 아닌 노동의 수단으로 인정하고, 임대와 노동의 구조를 합법적·합리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원청에게 책임을 지우고, 투명한 계약 관행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것이야말로 건설현장의 불법 구조를 바로잡는 길이다.

건설기계 노동자는 결코 하청업자가 아니다. 우리는 건설현장의 안전과 품질을 책임지는 노동자이며, 땀과 기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더 이상 ‘불법업자’라는 낙인 속에 가둘 것이 아니라, 제도적 보호와 존중 속에 노동자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왜곡된 제도가 정의를 지배할 수는 없다. 이제는 건설기계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의 굴레를 끊고, 노동자가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약속한 변화의 출발점이자, 우리 사회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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