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민석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 작가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그의 시대 3부작 중 하나인 <혁명의 시대>에서 영국의 산업혁명(경제혁명)과 프랑스의 대혁명(정치혁명)을 근대를 형성하는 '이중혁명(Dual Revolution)'이라 명명했을 때, 그의 주장이 '유럽중심주의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근대성을 유럽의 경험 속에서 사유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유럽과 관계를 맺고 있던, 홉스봄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국의 시대”를 거치고 있던 비유럽 지역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경험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근대는 일종의 식민지적 근대’라는 역사학자 윤해동의 선언은 홉스봄의 역사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비판이다.

하지만 서구인들 자신의 힘으로 근대를 이뤘다기보다는 비서구인과의 교접, 상호작용 등을 통해 근대를 형성했다는 인식은 은연중에 서구인들이 무엇을 축적하고자 했는지를 놓쳐버렸는지도 모른다. 막상 프랑스에서 직접 그들이 축적한 근대성을 마주하게 됐을 때 충격을 받았던 건 이 때문이었다. 고전 고대 그리스 로마를 자신들의 문명적 근원으로 설정하고 그것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인들이 수백년 동안 축적한 문화적 토대는 실로 두터웠다. 그들의 근대가 전통과의 연속을 매개로 형성됐다면 비유럽지역, 특히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는 전통과의 단절을 전제로 성립하고 발전해 왔다. 동아시아 지역의 자본주의 발전이 아무리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들, 연속과 단절이라는 이 비대칭성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는 게 명백해 보였다.

예컨대 이러한 차이는 사회를 통합하는 기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를 여행하며 가장 놀랐던 일은 많은 이들이 표를 구입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그들이 검표관한테 붙잡혔을 때 미안해하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되려 검표관들한테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대중교통을 무단으로 이용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하는 게 한국인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겠지만, 프랑스인들은 반대로 검표관들이 자신의 ‘이동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동할 권리는 천부인권에 속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것을 보장해 줘야 하는데 되려 요금으로 그것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었다.

이처럼 프랑스가 개개인들을 ‘인권’을 매개로 권리의 주체로 설정해 국가·공동체에 일정한 ‘지분’을 지닌 존재로 파악한다면, 한국 사회가 개개인들을 묶어내는 기제란 사실상 천박한 물질주의에 가깝다. 원자화된 개인들이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기 위해 중앙을 향해 돌진하며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모든 걸 빨아들이며 개개인들을 중앙에 묶어두고 있다.

일찍이 A. 토크빌은 <앙시엥 레짐과 프랑스혁명>에서 프랑스에는 개인과 국가 사이의 ‘중간단체’들이 대혁명을 통해 제거돼 사실상 국가의 전제적 지배하에 놓이게 됐다고 했을 때, 마찬가지로 중간단체가 약한 한국 사회와 일정한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회적 기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거듭해서 몰아닥치는 소용돌이가 빠른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지 몰라도 서구적 근대성이 그랬듯이 새로운 규범을 창출하고 축적하며 물질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사회통합기제를 마련하기 어렵게 만든다. 동아시아 지역의 놀라운 경제성장에도 서구적 근대성이 여전히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까닭은 이런데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최근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돼 논란이 됐다. 많은 진보적 논자들이 반인권적 조치라며 반발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청소년 인권이 아니라 법안이 없이는 교내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지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문제라기보다는 교사가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했을 때 반발하는 ‘어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현장에 없다는 점이 법의 입안에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규범을 창출하지 못하는 정치로는 서구적 근대성을 넘어서는 일은 고사하고, 근대사회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조차 어렵다. 좌파 정치가 규범 창출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 작가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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