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출범이라는 주사위는 던져졌다. 출범식은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청와대 행사로 확정됐다. 상임위원의 임무는 출범식을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었다.
첫째는 경사노위의 구성을 마무리해야 했다. 노·사·정 대표 등 당연직은 이미 확정됐지만 위촉직은 모두 공석이었다. 4명의 공익위원과 노사 각 3명씩인 계층위원이 그들이었다. 신원조회 기간까지 고려하면 출범식까지 남은 한 달은 빠듯했다.
둘째는 출범식에 이어 열릴 1차 본위원회 의제를 정하는 일이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의 확대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경사노위 출범과 관련해 민주노총 배제와 경사노위 독립성(노사 중심성) 훼손 논란에 이제는 노동시간 유연화 논란까지 더해진 셈이었다. 경사노위가 노동존중사회의 구축을 내걸고서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의제로 채택한다면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노사정위원회 시절 2명이었던 공익위원이 경사노위에서는 4명으로 늘었다. 조정역할을 강화하려는 취지였다. 선임 방식도 달라졌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순차배제방식을 채택했다. 노사정위원장이나 노사가 추천한 사람 중에서 노사가 순차적으로 배제하고 남은 대상자를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방식이었다. 경사노위에서는 위원장이 노사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최저임금위원회와 노동위원회는 지금도 순차배제방식으로 위원을 구성한다. 순차배제방식은 노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후보를 걸러냄으로써 후보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반면 그것은 정치적 이유로 유능한 후보까지 배제할 가능성도 남긴다. 심사권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클 뿐 아니라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탈락한 후보에게 부당한 낙인을 남기기도 한다.
공익위원 후보를 뽑을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우선은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는 것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봤다. 그래서 법조계, 여성단체, 언론단체로부터 비공식 추천을 받았으며 마지막으로는 경영 경험을 가진 이를 추가했다. 교수나 연구자와 같은 전문가는 제외했다. 전문가는 의제별·업종별 위원회에서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성별·연령별 다양성은 확보했지만 이념의 균형은?
선임과정에서는 성별과 나이를 우선 고려했다. 당시 당연직 위원 대부분이 60대 이상 남성이었고 여성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한 명뿐이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위원회를 구성할 때는 특정 성별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21조), 이 조항은 당연직을 제외한 위촉직에만 해당되지만 경사노위의 전체 구성에서 가능한 한 성별・연령별 쏠림은 해소해야 한다고 봤다.
최종적으로 40대 여성 2명, 50대 여성 1명, 그리고 60대 남성 1명을 경사노위 초대 공익위원으로 제청했다. 이계안 위원(재계), 신연수 위원(언론계), 박봉정숙 위원(여성계), 그리고 김진 위원(법조계)이 그들이었다. 결과적으로 경사노위의 여성 참여 비율은 75%(4명 중 3명)가 됐다(국가통계포탈(KOSIS), 중앙행정기관 위원회별 여성 참여 현황).
성별과 나이는 다양하게 구성했지만 이념의 균형은 부족했다. 교차배제방식을 없앤 덕에 노사가 자기편 사람을 추천하는 것은 막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부와 가까운 인사를 공익위원으로 선임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공익위원에게 중립적인 관점에서 이해갈등을 조정해 줄 것을 주문하면서 실제로는 “정부측과 가까운 공익전문가를 활용해 정부 정책 수행을 위한 정당성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는”(최영기 외, 2022. ‘한국의 사회적 대화의 진단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발전과제’) 전례로 되돌아간 간 것은 아닐까,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는 말이 있다(최재천, 2024, <숙론>). 서로 섞여야 건강하고 새로워진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은 끊임없이 다양화한다. 최재천 교수는 다양화야말로 진화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색깔로 공익위원을 구성한다는 건 사회적 대화, 특히 조정 기능의 퇴화로 비칠 수 있다.
공익위원의 조정역할을 기대한다면 공익위원의 이념적 다양성도 간과할 지점은 아니다. 노사와 경사노위가 모여 성별·연령별 다양성과 함께 이념적 균형을 이루는 방안을 함께 모색할 수도 있다.
본위원회 공익위원, 정말 필요할까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공익위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꼭 필요한가”라는 게 그것이다. 공익위원의 역할이 따로 규정된 바는 없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에서 공익위원은 △전문가로서 논의 의제와 관련한 지식을 제공하고 △대안적인 정책과 제도개선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주체들 사이의 이견을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공익위원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한다면 현실적으로 공익위원은, 안타깝지만, 허울에 가깝다.
본위원회는 의제별·업종별 위원회에서 합의된 사항을 처리하는 최고결정기구다. 위원회의 운영과 관련해 운영위원회에서 합의된 사항을 확인하는 단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제별·업종별 위원회에서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 본위원회에서 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공익위원은 의제별·업종별 위원회는 물론 운영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합의되지 않은 의제가 본위원회에 올라오더라도 공익위원은 세부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노사와 정부 위원은 내부에서 보고를 받는다).
막상 공익위원이 제 역할을 하는 곳은 의제별·업종별 위원회다. 의제별·업종별 위원회에서 공익위원은 위원장을 맡아 직접 논의를 이끈다. 협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보태거나 이견을 조정하고 때로는 공익위원 권고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업종별·의제별 위원회의 공익위원은 경사노위 위원장이 노사의 의견을 들어 위촉하지만 관례상 노사 추천을 받는 형식을 택해 이념적 균형은 물론 성별 다양성을 조율한다.
결론적으로 본위원회에서 공익위원의 역할은 크지 않다. 표결에 참여하지만 개인 자격이라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경사노위에는 조직 대표보다 개인 자격의 위원이 더 많다. 노사정과 경사노위 대표 등 조직대표가 8명이라면 공익위원과 계층위원 10명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다. 그렇다면 노사정 대표의 합의를 위촉직 위원이 반대하면 그 합의는 어떻게 되는지 문제가 남는다.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뿐 아니라 공익위원이 참가한다는 점에서 ‘노사정+α’의 형태를 취한다. 그 α가 바로 공익위원이다. 하지만 본위원회가 사실상 형식 절차에 머무르는 현실을 감안하면 공익위원의 역할은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노사정위원회가 처음 출범할 당시만 해도 공익위원은 없었다. 노사정 각 2명과 정당 2명으로 구성됐다. 노사정위원회 이전의 사회적 대화기구였던 노사관계개혁위원회(1996.5~1998.2)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공익위원의 중재 역할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정혜윤 외 2023, <한국 노동정치의 거버넌스와 정책과정>).
공익위원의 필요성, 인원수, 그리고 구성 및 위촉 방식에 대해서는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노사 중심성의 원칙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tjpark0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