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정부는 임금체불, 불법 하도급, 조세포탈, 사회보험 사기, 산재 은폐와 같은 불법행위를 ‘노동범죄(Arbeidslivskriminalitet, A-krim)’라는 이름으로 묶어 대응하고 있다. 새로운 법률상의 죄목이 아니라, 노동환경법·형법·조세법·사회보험법 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정책적 범주다. 정부는 노동범죄를 “임금·노동조건, 세금·사회보험 규정 위반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기업이 부당한 경쟁이익을 얻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 개념은 노동권 침해뿐 아니라 범죄적 착취, 공정경쟁 훼손을 동시에 포괄한다.
노르웨이 전략은 노동범죄를 네 가지 주요 범주로 제시한다. 먼저 △최저임금 미지급, 장시간 근로 강요, 허위 근로계약 같은 임금·노동조건 위반. △건설·청소·운송업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불법 하도급과 위장 고용. △세금 포탈과 부가세 사기 같은 조세 범죄. 넷째 산재 은폐나 사회보험 부정수급이다. 이들 행위는 노동자 개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동시에 세수와 복지제도, 사회적 신뢰를 위협한다.
정부는 2015년 처음으로 노동범죄 대응 전략을 발표한 뒤, 2017년과 2019년, 2021년을 거치며 개정과 보완을 이어 왔다. 초기 전략이 단속과 처벌 중심이었다면, 개정 과정에서 점차 예방과 억제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고위험 업종을 겨냥한 선제 점검, 이주노동자 보호 강화, 그리고 공공조달에서 ‘성실성 요건’을 도입해 불법기업을 입찰에서 배제하는 조치가 대표적이다. 이는 법을 지키지 않는 기업이 시장 질서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해 정직한 기업을 보호하는 효과를 낸다.
전략 집행의 핵심은 노동범죄센터(A-krim센터)다. 노동감독청(Arbeidstilsynet), 경찰(Politiet), 국세청(Skatteetaten), 사회보험청(NAV) 등 기관이 같은 사무실에 상주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합동 점검을 벌인다. 위반이 확인되면 경찰은 형사입건, 노동감독청은 작업중지와 개선명령, 국세청은 탈세 추징, 사회보험청은 부정수급 환수에 나선다. 각 기관의 권한이 현장에서 조정·병행돼 작동함으로써 하나의 사건에 대해 형사·행정·조세가 함께 대응한다. 현재 전국 8개 권역에 센터가 설치돼 있으며, 지역 단위로 운영된다. 과거 상시 파트너였던 관세청은 2023년부터는 상주 대신 사안별 협력 방식으로 전환됐다.
노르웨이 정부는 노동범죄와 ‘사회적 덤핑’을 명확히 구분한다. 노동범죄는 법에 위반되는 행위로, 임금체불·불법 하도급·조세포탈·산재 은폐 등 구체적인 법규정 위반을 뜻한다. 따라서 경찰 수사와 형사재판, 노동감독청의 행정제재, 국세청의 추징과 같은 강제적 조치가 뒤따른다. 반면 사회적 덤핑은 반드시 법 위반일 필요는 없다. 합법적 계약 구조 안에서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안전 취약한 작업 환경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이런 조건이 국내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전반적으로 끌어내리는 경우 사회적 덤핑으로 규정된다. 다시 말해 사회적 덤핑은 법률적 범주라기보다, 노르웨이 노동시장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해치는 넓은 사회경제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 구분은 정책 설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노동범죄를 명확히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정부는 형사사법 절차를 동원해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다. 동시에 사회적 덤핑을 별도의 정책 과제로 설정함으로써, 합법적이지만 부당하게 낮은 임금이나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 개혁을 병행할 수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노동범죄와 사회적 덤핑을 나란히 관리함으로써 두 가지 효과를 노린다. 하나는 명백한 불법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해 억제력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합법적 착취 구조를 제도 개선과 정책 개입으로 바로잡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노동범죄’ 접근법은 불법을 노동자의 피해로만 보지 않고, 정직한 기업을 위협하고 시장질서를 훼손하는 불공정 경쟁으로 본다. 따라서 노동자 권리 보호와 공정경쟁 보장이 동시에 전략적 목표가 된다. 한국의 현실처럼 임금체불이나 산재사망이 주로 노동행정 위반으로 취급되는 구조와 비교하면, 노르웨이의 모델은 이를 형사사법 범죄로 재분류하고 경찰·검찰·노동부·국세청·사회보험 기관이 함께 대응하는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보다도 노동범죄를 정책적 범주로 세우고, 다기관 협업과 공공조달 연계를 통해 억제하는 노르웨이의 경험은 노동권 보호와 공정 경쟁에 기반한 시장질서를 동시에 강화하는 제도적 실험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