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예방·보상 전문가 단체 ‘노동건강정책포럼’이 정부의 국정과제안을 검토하고 산재예방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 참여제도 혁신, 산재예방·보상 행정조직 강화, 산재보험 정상화 등을 주제로 의견을 제시한다. <편집자>
대한민국은 지금, 하루에 두 명씩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현실을 끝내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기로에 서 있다. 추락·끼임 같은 재래형 재해는 여전히 줄지 않고, 위험한 일은 하청으로, 더 위험한 일은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구조 속에서 사고 위험은 되레 커지고 있다. 산재사망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단발성 대책이 아니라 뿌리부터 바꾸는 중장기 해법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산재사망 근절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각 부처가 앞다퉈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단기 성과 중심의 대응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사고는 매년 감소와 정체를 반복하며, 땜질식 대책은 현장의 구조적 위험을 그대로 둔 채 또 다른 사고를 부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처별로 흩어진 단기 대책을 넘어, 국가 차원의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고 이행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강력한 전담 조직이다.
행정조직 강화 방향은 네 가지로 분명하다.
첫째, 독립성이다. 산재예방·보상 행정이 다른 정책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 전략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려면, 명확한 권한과 예산을 갖춘 독립적 지위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둘째, 전문성이다. 재해예방, 피해노동자 보상, 사고 원인 조사, 교육과 훈련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 조직 안에서 긴밀히 협력하며 정책을 설계·집행·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축적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산재예방보상 연구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셋째, 통합성이다. 부처·기관별로 분산된 산재예방·보상 활동과 데이터를 조율·공유하고, 정부 부처 간 유기적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현장성이다. 근로감독관이 불시에 사업장을 방문해 구석구석 점검할 수 있는 권한과 충분한 인력을 보장해야 하며, 소규모 사업장과 비정규직 등 규제만으로는 예방이 어려운 집단에 대한 산재예방·보상 지원을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최근 국정기획위원회는 고용노동부에 ‘노동안전 차관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는 노동부 내부에 산재예방·보상 전담 고위직을 둬 정책 추진력을 높이자는 취지다.
반면, 예산·인사·조직 운영에서 완전히 독립된 ‘외청’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영국의 산업안전보건청(HSE)은 외청형태로 정치 상황이나 부처 내부의 우선순위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수사·감독·교육을 하나의 지휘체계 아래 둬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이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모델 모두 장단이 뚜렷하다. 노동안전 차관제는 현 체계 안에서 비교적 신속한 실행이 가능하며, 장관의 리더십 아래 부처 간 협력을 이끌 수 있다.
반면에 외청은 독립성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설치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와 예산 확보라는 큰 관문을 넘어야 한다. 핵심은 어느 방식을 택하든 ‘산재사망 근절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가’다.
이 논의는 단순한 조직개편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산재예방과 보상의 방향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실행 구조로 뒷받침할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대통령실·국회·정부·노동계·산업계·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우리 현실에 맞는 행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행정조직이 바뀌어야 정책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어야 현장이 바뀐다. 그 변화의 속도와 방향은 지금 대통령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