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정부와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14일 위험성평가를 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고용노동부가 책임을 묻기 위한 법 개정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위험성평가는 2014년부터 전 사업장에서 의무화되었지만, 미실시에 따른 직접적인 과태료 규정은 현재 없다. 다만 미실시로 안전보건관리자 직무가 방기되거나 안전·보건조치가 미흡할 경우 다른 법 조항 위반으로 간주돼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 제도가 여전히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비로소 ‘실효성 확보 장치’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개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평가를 아예 하지 않거나, 안전보건관리자가 형식적으로 서류만 작성해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21년 최근 조사(3년 주기)를 보면, 위험 요인이 있는 20인 이상 사업장의 72.4%가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51.5%는 정기적으로, 20.9%는 부정기적으로 평가를 진행했다. 그러나 업종별·규모별 편차는 뚜렷했다. 제조업의 실시율은 81.0%에 달했지만 서비스업은 60.7%에 그쳤고, 특히 소규모 사업장(20~49명 규모)에서는 세 곳 중 한 곳(32.4%)이 여전히 평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위험성평가가 진행된 사업장에서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지난 해 민주노총이 462개 사업장에 대해 실태조사를 한 결과, 위험성 평가 전 과정에 노동자 참여가 배제됐다는 응답이 34%에 이르렀다.

따라서 단순히 ‘평가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만을 따져 처벌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업종·규모별 격차와 형식적 운영 관행을 바로잡으려면, 노동자가 직접 참여해 위험을 발굴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 마련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사실 위험성평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주제는 ‘일터에서 위험관리의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숙고다.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처럼 사업장의 특정 담당자가 해야 하는 업무로 그친다거나 사고 발생 이후 이를 관리·감독하는 정부 차원의 사후적 관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일터에서 일상의 밝혀내고 예방할 수 있도록, 위험성평가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실제 위험에 노출돼 일하는 노동자가 직접 위험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노사가 동등한 위치에서 작업장 위험관리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 단기 파견노동자, 비정규직처럼 산재에 취약한 집단은 더 자주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정작 위험을 알릴 권리와 참여 통로에서는 배제되곤 한다. 이들이 위험을 위험이라 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일터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같은 사업장에서 유사 작업을 한다 하더라도 성별, 체격, 숙련도, 고용형태에 따라 위험 경험은 달라진다. 예컨대 보호구와 설비가 표준 성인 남성 중심으로 설계돼 체구가 작은 노동자에게는 오히려 사고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안전보건자료와 건강진단 결과가 한국어로만 제공돼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현실과 중량물 취급은 남성에게, 세밀한 반복작업은 여성에게 집중배치하는 관행 역시 서로 다른 근골격계 부담을 낳는다. 아리셀 참사에서 불법파견 노동자들이 비상구 위치조차 안내받지 못한 것은 이런 배제의 극단적이나 일상적인 사례다.

그래서 위험성평가가 진정으로 일하는 모두의 안전을 지향하려면 이 ‘일상적으로 배제되는 위험에 가까운 사람’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대책의 마련과 결과의 공표 역시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돼야 한다. 이번 처벌조항 신설은 환영할 첫걸음이다. 그러나 단순히 ‘위험성평가를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를 확인하는 방식만으로는 또 다른 형식주의를 낳을 수 있다. 실질성 있는 평가란 노동자가 직접 참여해 위험을 드러내고, 개선 대책을 함께 논의하며, 그 결과가 현장에서 실행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위험성평가의 성패는 종이에 남은 기록이 아니라, 노동자의 목소리가 제도 속에 반영되고 실제 안전조치로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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