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일하다 보면 실태조사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직업 현장의 이야기를 접한다. 어떤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최근 초·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어교원이라고 하면 대학 어학당의 강사를 먼저 떠올리지만, 초·중·고에도 한국어교원 자격을 가진 한국어강사가 있다. 이들은 한국어가 제2언어인 이주배경 아이들이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목표는 생활 회화를 넘어,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습 한국어’ 수준으로 이끄는 것이다. 엄마를 따라 고향을 떠나온 국제결혼 자녀, 탈북 청소년, 난민 아동, 외국인 가정 자녀 등 다양한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고, 수업을 따라가고, 평범한 시민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한국어강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주배경 학생이 이미 20만명에 달했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강사의 수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한국어강사들이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통계가 없어 강사들의 정확한 숫자 파악이 안 되고 법령은 내용이 없고 한국어 학급이나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을 위한 지침에도 강사에 대한 부분은 쏙 빠져있다. 방과후학교 강사만 해도 모집 절차부터 업무·수당·계약기간·재계약 평가·계약 해지 등 근로관계의 상당 부분이 가이드라인에 정해져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학교에 따라 근로계약서를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하며 명칭도 위촉계약서, 수탁계약서 등 제각각이다. 수업 시수는 예산이나 일정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고, 학기 중에 갑작스럽게 수업이 없어지기도 한다. 급여명세서나 휴가, 퇴직금 등 기초적인 근로기준법상 권리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이런 무규범의 와중에도 각 교육청이 엄격히 지키는 원칙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교육청 관내 2개 학교 이상 근무할 경우 주당 수업시간 합이 15시간 미만이어야 한다”는 조항이다. 학교 하나가 아니라, 활동하는 시·도 단위 전체 기준이다. 경남에서 일하는 강사라면 경상북도나 전라남도까지 출퇴근해야 15시간 이상을 일할 수 있다. 결국 초·중등 한국어강사라는 직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해진다. 교육청은 애초부터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대우하지 않으면서도,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되는 ‘초단시간 근로자’의 제한을 덧씌워 극심한 이중의 제약을 가한다.

강사의 노동권 문제는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로 나아간다. 현장에는 제대로 된 교실조차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음악실, 과학실을 전전하는 것은 나은 편이고, 종례나 청소가 진행되는 교실 한쪽에서 가림막만 치고 수업을 하거나, 빈 공간을 찾아 창고나 휴게실에서 수업하기도 한다. 한국어 수준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한날 한교실에서 따로 가르쳐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맡은 학생을 언제까지 얼마나 가르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낯선 환경이 불안한 아이들과 어렵게 쌓은 관계도 언제든 끊길 수 있다. 강사들의 노동도, 아이들의 한국어 학습도 파편화되고 분절된다.

이런 노동현장에서 강사들을 붙드는 건 바로 아이들이다. 강사들은 자신들보다 아이들의 학습권 이야기에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아이들의 한국어 수업은 정말 방치됐다는 말이 맞아요. 아무도 그걸 챙기는 사람이 없어요. 저는 이게 교육적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의 현장에는 삼국시대라는 단어도 모른 채 국사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있다. 공부하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앉아서 단어를 외우는 방법부터 알려줘야 하고, 시험기간에는 함께 수학 강의 유튜브를 보며 수업시간에 이해하지 못 했던 부분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수업에 의욕이 없는 아이들이 가끔 힘빠지게 하지만 아이들보다 한국어교육에 관심이 없는 어른들 탓이라는 것을 안다.

한국어강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본 학교 세계는 방치된 노동과 교육이 서로를 붙잡고 버티고 있는 곳이었다. 강사의 노동권과 학생의 학습권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권리가 무너진 노동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배제시키고, 배제된 아이들은 가르치는 사람의 노동을 불안하게 만든다. 방치된 현실에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서는 방법밖에는 없다. 한국어교원들이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에 모여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첫 걸음은 초·중등 한국어 수업의 노동실태부터 드러내고 알리는 것이다. 앞으로 만들어 낼 변화에 많은 응원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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