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매일노동뉴스 재구성

노동자 사망사고가 단순히 ‘수치’로만 기록되고 있다. 각각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정부는 중대재해에 강력한 제재를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에 대해 면허 취소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6개월이 흐르는 동안 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진단하고 감시해야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검찰 기소와 재판 현황을 전수조사해 10여차례에 걸쳐 실무상 적용 문제점과 개정방향 등을 모색한다. <편집자>

검찰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소한 사건이 100건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체 수사 대상의 11%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가 검찰로 송치한 사건으로 좁혀도 절반 정도에 그쳤다. 사고발생일로부터 기소일까지 걸린 기간도 평균 555일(약 1년6개월)로 계산됐다. 수사가 장기간 지연되는 것으로 드러나 검찰의 수사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매일노동뉴스>가 중대산업재해 수사 사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검찰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27일부터 올해 6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경영책임자와 법인은 총 121건으로 파악됐다. 기소 사건에서 사망자만 총 156명, 부상자는 37명에 달했다. 단일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낸 경기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사망 23명·부상 8명)와 부산 해운대 반얀트리 리조트 화재(사망 6명·부상 4명) 사고가 포함된 수치다. 조사는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검찰과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진행했다.

▲ 편집 김효정 기자
▲ 편집 김효정 기자

올해 6월까지 기소 사건 사망자만 156명
송치 사건 중 59% 기소, 연도별 증가 추세

기소 사건은 전체 수사 착수 사건인 1천91건(올해 3월 기준)의 11%에 그친다. 1분기 조사 결과만 공개된 것을 고려하면 현재까지 전체 수사 착수 대비 기소율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송치된 사건도 205건에 불과했다. 송치 사건 중 기소율 역시 최소 59%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을 보였다.

검찰이 직접 수사해 입건한 사건은 1건에 그쳤다. 지난해 1월3일 의정부지검이 아파트 관리업체 대표이사를 기소한 사건이다. 대표이사는 2022년 7월4일 경기 양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에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사다리에 올라 배관을 점검하다가 사다리가 부러지며 추락해 노동자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사고현장에 피해자 혈흔을 묻힌 안전모를 몰래 놔둬 산재를 은폐한 혐의를 받는다.

기소 건수는 연도별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첫해인 2022년에는 32건이 송치돼 이 중 11건만 기소됐다. 하지만 △2023년 22건(송치 71건) △지난해 41건(송치 77건) △올해 6월 말 47건(송치 25건)으로 점점 늘고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 기소 건수가 지난해 기소 사건보다 많은 점이 눈에 뛴다. 중대재해 실무 사례가 쌓이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은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검찰이 재판에 넘기지 않고 종결한 사건(불기소)은 28건으로 확인됐다. 전체 송치 사건 대비 약 14%에 달한다. 2022년 2월 노동자 13명이 독성물질에 급성중독된 자동자 부품 제조업체 대흥알앤티에 대해 그해 6월 불기소한 사건을 시작으로 건설사 화성산업(2023년 5월 불기소)·정유업체 에쓰-오일(2023년 8월 불기소)·LG전자 자회사 하이엠솔루텍(2023년 8월 불기소)·홈플러스(2023년 11월 불기소)·현대자동차(2023년 11월 불기소)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 편집 김효정 기자
▲ 편집 김효정 기자

반얀트리 화재·아리셀 참사 ‘최단 기간 기소’

문제는 수사당국의 수사 속도다. 본지가 기소 121건의 사고발생일로부터 기소일까지의 소요 기간을 분석한 결과, 평균 555일(약 1년6개월)이 소요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첫해는 기소가 상대적으로 빠른 편이었지만 해를 넘길수록 수사 속도가 늘어지고 있는 부분이 확인됐다. 특히 대기업 사건의 경우 사고발생일과 무관하게 수사가 매우 더뎠다. 다만 사망자수가 많거나 여론의 관심이 높은 사건은 기소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

실제 최단 기소 소요기간을 보인 사건은 노동자 6명이 숨진 ‘부산 해운대 반얀트리 리조트 화채 참사’다. 올해 2월14일 사고가 발생한 지 74일 만인 4월29일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시공사인 삼정기업의 경영책임자인 박정오 회장과 아들 박상천 삼정이앤시 대표를 구속기소 했다. 두 번째로 수사기간이 짧았던 사건은 지난해 6월24일 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화재 참사다. 수원지검이 92일 만에 박순관 아리셀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법 시행 초기 일어난 사고에 대한 기소도 빨랐다. 직업성 질병자 16명이 발생한 ‘두성산업’(2022년 2월16일 사고~2022년 6월27일 기소·131일)을 비롯해 △기계에 협착돼 이주노동자 1명이 숨진 경남 양산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엠텍’(2022년 7월14일 사고~2022년 12월27일 기소·166일) △중대재해 1호 선고 사건인 경기 고양의 건설사 ‘온유파트너스’(2022년 5월14일 사고~2022년 11월30일 기소·200일) 등은 사고 발생 200일 내에 대표이사가 기소됐다.

▲ 편집 김효정 기자
▲ 편집 김효정 기자

‘씨비아이’ 사고 38개월, 1년 넘긴 사건 74%

반면 쟁점이 복잡하거나 기업 규모가 큰 사고의 경우 기소까지 1천일을 넘겼다. 최장 기소 소요기간을 보인 사건은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 ‘씨비아이(CBI)’였다. 기소까지 무려 1천142일(38개월)이 걸렸다. 3년이 넘도록 검찰이 사건을 ‘뭉개고’ 있었던 셈이다. 인천지검은 2022년 2월16일 노동자 1명이 자동화 설비의 오류 점검 중 가동하는 기계에 목 부위가 끼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올해 4월3일 씨비아이 대표이사를 기소했다.

씨비아이는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의장의 동생인 김화영 전 케이큐브홀딩스 대표가 회사에 합류하는 등 유상증자를 통해 사세를 확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견기업이다. 씨비아이 대표는 사고 당시 위험성평가를 누락하고 불량한 방호장치에 대한 점검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기계의 안전센서는 2013년 이후 해제돼 작동하지 않은 상태로 파악됐다.

명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사항이 발견됐는데도 수사 속도가 매우 더뎠던 셈이다. 기소까지 1천일을 넘긴 사건은 씨비아이 사건 말고도 △다대종합건설(1천128일) △행성화학(1천102일) △KCC건설(1천13일) 등 3건이 있었다. 검찰 송치로부터 기소까지 1년을 넘긴 사건으로 넓혀보면 90건에 달했다. 평균 655일이 걸렸다. 전체 기소 사건(121건)에서 무려 74%를 차지한다. 검찰 수사에만 2년이 넘은 사건도 33건(평균 886일)로 파악됐다. 1년 이하인 기소 사건이 31건(평균 267일)에 불과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 편집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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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먹으면 기소, 검찰 의지 문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6개월이 흘렀지만, 검찰의 수사의지가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소가 송치 사건의 절반 정도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기소까지 걸리는 시간도 1년을 훌쩍 넘기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검찰에만 사건을 맡겨선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로펌의 중대재해 전문 변호사는 “아리셀 화재참사와 부산 반얀트리 화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소를 빨리할 수 있다”며 “그런데 수차례 보강수사를 지시하는 등 대검찰청이 중대재해 사건을 지휘하면서 수사가 지나치게 더딘 측면이 있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나 특별사법경찰관의 적극 도입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 특별취재팀(홍준표·강한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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