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 됐을까. 노동자 세상은 고사하고 무슨 혁명적 변혁 운운하는 생각도 없다. 저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서 세상을 불태울 기세로 피 끓었던 머리는 오늘 현실적 타산부터 따진다. 나라를 뒤집을 듯이 날뛰던 내 심장은 하루를 살기 위해서 소심하게 뛰고 있을 뿐이다. 수십 년 동안 어제의 세상은 가고 혁명도 시들었다. 추상으로 하늘 높이 치솟던 사상은 대지를 딛지 못한 채 추락해 버렸다. 그 뜨겁던 청춘의 시대는 가버렸다. 오늘 문득 나는 돌아봤다. 어쩌다가. 이렇게 나는…. 12·3 내란사태 때문이라고, 분명히 변명일 테지만 그탓이라도 해야겠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이 땅에 서서 오늘을 응시할 수 있을테니까.
그저 민주주의고, 공화국이다. 그것 말고는 어떤 것도 내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무엇도 내 심장에 새겨지지 않는다. 2024년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과 그 일당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으로 이 나라를 짓밟았을 때부터였다. 노동자와 노조를 상담하고 소송해 왔던 나는 자본과 권력에 대해 노동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왔다. 민주주의도 공화국도 아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날 이후에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와 공화국으로 온전히 살아나는 것에 정신이 팔렸다. 다른 것은 내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떤 것도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12·3 사태로부터 달려왔다. 이 나라가 내란을 진압하고 민주공화국으로 바로 설 수만 있다면 노동이 아니라도 그를 지지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만큼 온통 정신이 팔렸다.
2. 나라가 송두리째 망가졌다. 수십 년에 걸쳐 힙겹게 세워 온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산산조각났다. 지난한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굳건하게 쌓아올렸다고 믿었던 탑이 무너졌다. 적어도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고,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함부로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아니었다. 믿음은 의심받고 부정당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심을 철저히 배신당했다. 윤석열 일당이 저지른 12·3 내란사태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부정했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짓, 반역을 저질렀으니 이 나라는 온전히 민주공화국일 수 없었다. 대통령이 짓밟아 파괴할 만큼 이 나라는 온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상계엄에 특전사 등을 비롯한 군대와 서울경찰청 등 경찰이 동원돼 가담한 것을 비롯해서 행정안전부 등 정부 주요부처까지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거나 따르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의 민주공화국에 대한 반역행위를 막아낼 만큼 군경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정부조직은 올바로 서 있지 못했다. 총리와 주요부처의 장관들은 가담했거나 방조했고, 적어도 진압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명백히 내란죄 등의 범죄였는데 말이다. 현행범으로 누구나 체포할 수 있는데도 정부의 누구도 대통령 윤석열을 비롯한 범죄자들을 체포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3일 밤에 침묵했고,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자가 상급자라도 그 지휘를 받고 있다고 해도 상급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해서 범죄를 진압할 수 있는 것인데 이 나라에서는 누구도 그렇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형사법 체계에서는 즉각적으로 윤석열 일당의 반역행위를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 그래서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거쳐 이 나라는 겨우 내란세력을 제압해 올 수 있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주요임무종사자 몇몇이 체포·구속돼 재판받고서 처벌을 앞두고 있지만, 오늘까지 이들을 제외한 12·3 내란 가담자들은 아직 실체조차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당연히 대통령실을 비롯해서 많은 정부조직이 가담했을 텐데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집권당이었던 국민의힘 의원들이 탄핵 반대, 윤석열 지지 등의 행태를 벌여 왔던 것들을 볼때 국민의힘 의원 일부가 내란에 가담했을 거라는 강한 의심이 든다.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만 규명해서 책임을 묻고 있을 뿐이다. 실체를 파헤쳐 내란에 가담한 자들을 심판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야말로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자꾸 통합을 말하고 내란세력의 발본색원은 멀기만하다. 이러니 아직까지도 내란세력으로부터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지켜내는 것이 관심이고 나도 거기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3. 어쩌다가 이렇게 돼 버렸다고 해도 생각을 좀 해보자. 노동의 자유와 권리는 내가 해야만 할 주장이다. 노동자를 대리하는 노동변호사로서 12·3 내란사태에 한순간 민주공화국타령을 하게 됐더라도 탄핵과 대통령선거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제는 생각하고 주장해야겠다. 지난 26일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 시흥시에 있는 SPC 삼립공장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산업재해 방지대첵 마련 등 직접 노동자를 챙기고 있는데 나는 무얼하는 것일까. 민주공화국에 정신이 팔려서 나는 무얼하고 있단 말인가. 민주공화국에 노동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본래 노동을 떠난 민주공화국 건설 투쟁은 없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시민혁명의 역사를 보더라도 민주공화국 건설의 단계 단계마다 가면 갈수록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주요 강령에 포함됐다. 프랑스 시민혁명만은 아니다. 그뒤 민주공화국을 위한 세계사는 민주주의 강령에 포함돼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됐지만 마찬가지였다. 독립운동가들과 혁명가들 모두가 일제에서 해방된 나라에서는 노동자에게 파업 등 노동기본권과 하루 8시간 노동제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민주주의 혁명의 필수강령으로 섬기고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일당의 반역을 극복하고 다시 민주공화국을 새롭게 건설해야 할 오늘 이 나라에서 이 민주공화국의 필수강령은 없다. 마치 모두 보장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파업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은 아직 이 나라 노동자에게 보장돼 있지 못하다. 하루 8시간 노동제는 아직 이 나라에서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 이에 대해서 아마도 내가 과장해서 말하고 있다고 당신은 여길지 모른다. 아니다.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법이 당신을 속여 왔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라. 과연 이 나라의 법이 노동자에게 노조할 자유, 교섭할 자유, 무엇보다도 파업 등 쟁의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온통 제한과 금지로 가득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할 뿐이다. 노동자에게 자유는 없다고 이 나라의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법을 두고서 노동자의 자유를 말할 수 없다.
하루 8시간 노동제도 마찬가지다. 1886년 5월 시카고 노동자들이 총파업 투쟁으로 피 흘렸던 것은 하루에 8시간만 일하고 살기 위해서였고, 국제노동운동이 노동절로 기념하며 투쟁했던 것도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에게 하루 8시간 노동제 쟁취가 가장 중요한 노동자의 권리이기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노동운동도, 해방 후 건설될 나라의 민주강령도 당연히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 그리고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을 선포했고, 1953년 근로기준법은 1일 8시간, 1주간 48시간에 관한 노동시간제를 규정했다. 이것은 위와 같은 하루 8시간 노동제 역사를 따른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이를 초과해서 일주일에 12시간을 연장근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8시간 노동제를 죽여 버렸고,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정부와 법원은 그렇게 법집행을 해왔다. 이렇게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은 하루 8시간 노동제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로 남아 있다. 결코 어쩌다가가 아니다. 사용자 자본과 권력의 노동제를 무시하는 법과 법집행을 통해서 악의적으로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제는 노동자의 권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이 보장해야 할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볼 때 이 나라는 아직 온전히 노동자를 위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내란세력을 발본색원해서 민주공화국을 똑바로 세워내는 게 중요하다. 긴박해도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공화국을 위해서라도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의 기본권은 보장해야 한다고 외쳐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