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지심 공인노무사(법무법인 오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40일 넘게 진행된 주얼리 노동자의 노숙농성이 끝났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얼리 노동자들을 만난 후, 주얼리 사업장 점검 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안도감이 번지는 사이, 노조의 공지가 마음을 파고든다. “승리보고대회는 없습니다. 애초 정부의 행정과 역할의 부재가 만든 피해였기 때문입니다.”

주얼리 노동자 김정봉은 지난 1월, 9년간 일한 사업장에서 경영상 이유로 해고됐다. 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로 판정했지만 판정서를 받은 그날, 사용자는 복직이 아닌 폐업을 통보했다.

이겼지만 이길 수가 없었다. 폐업하고 홀연히 떠난 사용자에게는 아무 책임도 남지 않았다. 2007년 부당해고 처벌 조항이 폐지된 이후 노동자를 쓰다 버린 사용자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폐업’이라는 두 글자로 원직복직 책임도 벗어나고 노동위원회의 이행강제금 부과도 간편하게 피할 수 있는 현실은, 노동위원회는 물론 근로기준법의 존재 이유조차 허무하게 만든다.

허망한 현실 앞에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얼리 노동자들은 사업장 앞에 있던 농성장을 노동청 앞으로 옮겼다. 복직 싸움의 대상은 사라졌지만, 주얼리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현실을 방관하는 노동부와 세상을 향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다.

가장 힘든 것은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다. 내가 여기에 살아서 일하고 있는데, 4대 보험 미가입이 관행으로 자리 잡은 주얼리 노동자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증명할 길이 없다. 1만명의 종로 주얼리 노동자가 유령이 된 상황 속에 더욱 기괴한 것은, 법 위반을 책임질 행정 주체 역시 ‘유령’이라는 것이었다. 노동청은 4대 보험 미가입은 근로복지공단 소관이라고 떠넘기며 근로감독 책임을 방기했다. 주얼리 노동자들은 청산가리, 황산을 끓이고 양잿물에 손을 씻으며 일했지만 산업안전보건교육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도, 특수건강검진도 먼 나라 이야기였다. 노동청이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까. 주얼리 노동자들이 ‘승리’를 보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제 겨우 첫발을 떼었고 그 시작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주얼리 사업장 점검계획을 발표하며 “주얼리 사업장이 영세하다는 점을 감안해 근로감독에 바로 착수하기보다 ‘사업장 자율점검’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개선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꽤나 유연한 ‘사업장 자율점검’이라는 방식에 불안함을 느끼며, 동시에 주얼리 업계가 정말 영세한 곳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게 된다. 주얼리 사업장이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영세한 곳이어서가 아니라 ‘그래도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휴일수당을 요구하면 ‘미친 소리’라는 말이 되돌아오는 것이 주얼리업계다. 미친 것은 노동자인가, 이러한 현실인가. 노동청은 법 위반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법 위반에 피해를 입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주얼리 노동자들의 노숙농성 기간, 찜통더위보다 힘든 것은 노동청의 무관심이었다. 무관심에 시들어가던 어느 날 노동부장관 후보자가 눈길을 주자 그제야 카메라 플래시가 노동자들을 향했다. 일을 하는 노동자가 일을 하지 못하고 40일 넘게 노숙을 해도 세상에 그것은 뉴스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노동부가 원래 해야 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뉴스거리가 되는 기이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노동자다. 노동법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그것이 잘못됐다고 외친 노동자가 기어코 변화의 물꼬를 만들어 냈다. 노동자들이 노동부에 감사할 일이 아니라, 노동부가 노동자에게 미안해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승리보고대회를 하지 않는다. 이전에도 지금도 걸어온 길을 앞으로도 다시 이어서 걸어갈 뿐. 진짜 승리자인 진짜 노동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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