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연구, 노조 자문, 정부 노동정책 조언, 기자 응대까지. 노동 연구자들은 바쁘다. 안 그래도 하루가 빡빡한데, 관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 각종 뒤풀이까지도 챙겨야 한다.

일과 시간 노동의제에 날카로운 지적을 이어 가던 노동 연구자들도 퇴근 뒤에는 유튜브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들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산별노조·직업병·노동시간 단축 등을 설계하는 연구자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해 줬다.

아이브·트와이스 등 무대영상으로 ‘힐링’

노사관계·원하청관계·산업안전보건 분야를 다루는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유튜브 알고리즘 지분을 묻는 질문에 쑥스러워하면서 “음악 관련 채널들을 많이 본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고 요청하니 돌아온 답은 “아이돌 걸그룹”. 좋아하는 여돌(여자 아이돌)은 너무 많아서 꼽을 수 없다. 굳이 떠올리면 아이브(IVE·안유진·가을·레이·장원영·리즈·이서)지만, ‘최애’는 아니다.

박 연구위원은 “신곡을 내는 걸그룹이면 다 좋아한다”며 “뮤비(뮤직비디오)도 보고 직캠도 보고 무대영상도 본다”고 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 공식 유튜브 채널은 거의 구독한다. 바람이 있다면 남돌(남자아이돌)과 여돌의 채널을 분리하는 것이다. 남돌은 별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 시청이 시사점을 남기기도 한다. 박 연구위원은 “아이돌 산업에서의 노동권도 연구하고 싶다”며 “아이돌뿐 아니라 스태프들이 많은데, 트와이스(TWICE) 같은 경우는 멤버가 많아서 스태프들이 100명이 넘으니까, 노동권이나 근무시간도 연구해 보고 싶다. 대우가 좋아질수록 더 좋은 음악과 무대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녹록지는 않은 듯하다. 그는 “연구주제로 냈다가 한 번 까였다”고 아쉬워했다.

생로병사의 비밀, 건강·먹방 ‘1석2조’

박 연구위원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여돌 덕질 취미를 기사화해도 괜찮은 걸까 싶기도 했다. 배우자인 구은회 일환경건강센터 PL에게 팩트체크를 하니 “100% 진실”이라고 확인해 줬다. 구 PL은 배달라이더 위험성평가 체계 개발 등 직업병·산업안전보건 관련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구 PL은 한술 더 떴다. “나 완전 이상한 거 보는데.” 구 PL은 “아침에 씻고 세수하면서 주로 생로병사의 비밀을 본다”고 했다. 불순(?)한 의도가 섞였다. 구 PL은 “아침에 유튜브 켜면 정치 같은 거는 복잡하니까 보기 싫고, 생로병사의 비밀이 건강 방송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먹방(먹는 방송) 아니냐”며 “나보다 많이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저 정도 안 먹어서 다행이다’라고 위안도 얻고 한다”고 말했다.

구 PL의 숏츠(shorts) 알고리즘에는 옛날 드라마가 뜨기도 한다. 추천작은 KBS 논픽션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이다. 그는 “문송면 수은 중독 사건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직업병 예방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극화된 거라 한 번쯤 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 자료사진 생로병사의 비밀 갈무리
▲ 자료사진 생로병사의 비밀 갈무리

‘건테크’로 유튜브 보며 맨발 걷기

산별노조 전문가로 알려진 이주호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주말이 되면 집 근처 효창공원에서 맨발 걷기를 한다. 그의 알고리즘은 운동 관련 영상으로 채워진다. ‘박동창의 맨발강의’ ‘바벨라트로 홈트레이닝’ 등의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운동에도 관심이 많은데, 최근 큰 자극을 받았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갑자기 대선에 나온 김문수 아저씨가 턱걸이를 하던데, 그걸 보면서 우리가 보수보다 턱걸이를 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헬스장에서 해야 할 5대 운동’ ‘코어 운동’ 같은 영상을 클릭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청 시간을 조절해야 할 정도다. 그는 “나이가 먹으니까 운동에 관심이 가져진다”며 “그런데 유튜브에서 운동하는 걸 한번 보니까 유산소가 또 좋다고 하고, 달리기를 하라고 하고, 자꾸 영상에 빠져드니까 적당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유튜브 왜 봐? ILO 웹사이트 봐야지”

유튜브를 되도록 멀리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찐 워커홀릭’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2~3일에 한 번씩은 ILO·베르디·유니숀 등 국제기구나 외국 산별노조들 웹사이트를 찾아보면서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데, 이게 몇 시간이 걸린다”며 “그게 내 루틴이고, 그거 보는 게 더 바쁘기 때문에 유튜브 볼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24시간 일과 연결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김 소장이 가끔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정치 이슈 등을 필터링 없이 다루는 ‘매불쇼’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도 종종 본다. 꾸준히 보는 건 아니고, 영상에 대한 소문이 돌면 시청한다. 주 4일 근무제나 특수고용·플랫폼 노동과 관련한 영상도 찾아서 본다. ‘매불쇼’는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도 언급했다. 채 교수는 “유튜브는 별로 시간이 없어서 못 보긴 하는데 매불쇼는 재밌다”며 “어려운 시사 문제도 쉽고 유쾌하게 설명하고, 패널들 관계설정도 격이 없어 편하게 보기 좋다”고 추천했다.

보건의료노조 등 주요 산별노조를 자문하고 있는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은 “유튜브는 보지 마라”고 권했다. 이 소장은 “유튜브가 건강한 여가 활동인지 모르겠는데, 자연으로 나가서 수영도 하고, 환경의 중요성도 느끼고 그래야지 유튜브 보면 전력이나 사용하고 이산화탄소도 배출한다”며 “기후위기에 대응하자고 하면서 실제 일상생활은 반역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소장은 유튜브 대신 TV로 바둑과 야구를 즐겨 시청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달 공개한 올해 정규리그 통계에 따르면 게임당 평균 경기시간은 3시간2분으로 집계됐다. 대국은 속기전의 경우 2시간 내외, 본격 기전은 3~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유튜브를 보기보다는 야외활동을 하라고 했는데, 유튜브와 TV 시청은 뭐가 다른 걸까. 이 소장은 “사람들이 어떤 수를 둘지 요리조리 찾아나가는 바둑이 재밌다”며 “사실 나는 바빠서 자연에서의 야외활동은 잘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 자료사진 매불쇼 갈무리
▲ 자료사진 매불쇼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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