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관 아리셀 대표.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박순관 아리셀 대표.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검찰에서는 박순관 피고인의 죄책이 (박중언 총괄본부장보다) 더 중한 걸로 생각하나요.”

검찰이 지난 23일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등 위반 혐의 결심공판에서 박 대표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하자 재판장이 이렇게 질문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순관 대표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의 구형량인 징역 15년보다 박 대표의 구형량이 높아 물어본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해 6월24일 노동자 23명이 배터리 폭발 화재로 숨진 사고와 관련해 박 대표에게 검찰이 내린 구형량은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최고 구형량’이다. 통상 징역 1~2년에 머물렀던 기존 중대재해 사건 구형량과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높다.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단일 사고로 큰 인명피해와 더불어 불법파견 이주노동자 고용 문제가 겹쳐 구형량이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다만 검찰이 마련한 구형기준의 최고 등급에 미치지 못해 미흡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구형기준 34개 세분화, 최고등급보다 세 단계 낮아

2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이 박 대표에게 내린 구형량인 징역 20년은 검찰의 구형기준 최고등급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확인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2022년 12월 발간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재판 실무상 쟁점’ 현안보고서에 따르면 검찰은 초범일 경우 범죄등급을 1~34등급으로 구분해 징역형과 벌금형 기준을 마련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구형량인 징역 20년은 ‘31등급’에 해당했다. 31등급은 징역 20년(240월)~25년(300월)이 속하는 구간이다.

최고 등급(34등급)은 징역 30년(360월)~40년(480월)이다. 박 대표에 대한 구형량(20년)은 최고 등급에서 세 단계 낮다. 검찰은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범죄의 기본구간을 징역 2년6월 이상에서 징역 4년으로 정하면서 22등급으로 나눴는데, 박 대표 구형량은 기본등급에서 9등급 높은 수준이다. 대검은 사망사고 발생시 1년 이상 징역에서 30년 이하 징역(병과 가능)까지 가능하다고 정한 바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했을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아리셀 구형량이 검찰이 마련한 ‘가중·감경인자’에 적합한지도 따져볼 대목이다. 검찰은 가중인자로 △유사사고 재발 △사고 규모 및 중대성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정도 △피해 회복 및 구호조치 미흡 △사고발생 책임 및 비난 가능성 등 △동종전력 존재 등을 제시했다. 감경인자로는 △사고 발생 경위 참작사유 △합의 및 피해 회복 △진지한 반성 △동종전력 부존재 등이 포함됐다.

반성 없는 아리셀, 가중인자 얼마나 반영?

아리셀의 경우 노동자 23명이 숨져 사고 규모와 중대성 등 가중인자에 대부분 접목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특히 사고 1년이 지나도록 유족 모두와 합의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태도를 봤을 때 감경인자는 적용할 여지가 적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박 대표쪽은 재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실질적인 경영책임자가 아니다”며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이 실질적인 대표라고 주장해 왔다. 박 대표는 결심공판에서도 최후진술을 통해 “책임이 제 아들에게 지워진다는 현실이 아버지로서 참혹하고 비통하지만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라 생각한다”며 “검사가 아리셀을 경영했다고 말한 사항은 아버지로서, 경영선배의 조언에 그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결심공판에서 밝힌 공소사실 요지를 보더라도 가중처벌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반복된 화재’를 프레젠테이션(PPT) 앞쪽에 배치했다. 아리셀에서는 2021년에만 11~12월 연속으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났고, 이듬해 3월 폐전지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해 6월22일 전지 폭발 사고로 이어졌고, 이틀 뒤에는 23명이 죽고 9명이 다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더구나 수사 과정에서 △대한산업안전협회의 화재 위험성 지적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 시정조치 요구 무시 △작업량 증가와 비숙련 이주노동자 투입 등이 드러났다.

박 대표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정도가 중대한 점 역시 가중인자에 꼽힌다. 박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상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 방침 마련(4조1호)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4조3호) △재해예방 예산 편성 및 집행(4조4호)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4조5호) △중대재해 발생시 위험요인 제거 등 매뉴얼 마련(4조8호) 등 5개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기존 중대재해 사건에서 경영책임자에게 적용된 시행령상 의무 위반 사항이 3~4개인 점을 보면 위반 정도가 많은 편에 속한다.

법인 구형량 상한선의 16% “최고 구형했어야”

아리셀 법인에 대한 구형량도 주목할 지점이다. 검찰은 법인에 벌금 8억원을 구형했다. 박 대표 구형량과 동일한 범죄등급 31등급(초범 기준 벌금 8억원~9억5천만원)에 속한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대형선박 수리조선소 삼강에스앤씨 법인에 ‘벌금 20억원’의 최고액 벌금형이 선고된 사례가 있어 아리셀 법인에 대한 구형량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정형 상한선이 벌금 50억원이라 아리셀 법인 구형량은 상한선의 16%에 그친다.

구형량이 선고형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선고 결과도 주목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선고된 48건 중 실형은 단 5건에 머물고 있다. 통상 구형량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선고가 나와 최고 구형량이 나왔어야 한다고 법조계는 본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장인 신하나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단일 산재사고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피해의 심각성과 법 위반의 정도, 반성이 전혀 없고 이후 피해 회복이 전혀 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최고 구형이 걸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재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조안전 대표)는 “검찰 기준에 따르더라도 사고 규모 및 중대성, 피해회복 및 구호조치 미흡 등 가중인자를 적극 고려해 구형기준표상 최고 수준을 적용해 징역 30년형을 구형했어야 마땅하다”며 “여전히 검찰은 중대재해 사건 법 집행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참사대책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 구형이) 중형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23명의 목숨에 비해서 너무나도 가벼운 형량”이라며 “그럼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수준의 구형량은 아리셀 참사가 단순 사고가 아닌 계획된 살인에 가까웠음을 법정에서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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