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진제라고 퇴직금 안 돼요?’ 힘겹게 윤석열 일당의 내란을 진압하면서 대통령선거를 거쳐 이재명 정부가 출범해 국민주권정부의 기치를 내걸고 나아가고 있는 오늘도 노동자권리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런 말을 듣고 있다.
미지급된 임금 및 퇴직금을 청구한 사건의 원고 노동자가 지난주 내게 했던 말이다. 휴대폰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여서 조금 머뭇거리다 받았더니 그는 항의를 쏟아냈다. 준비서면을 작성하느라고 바빠 짧게 통화할 생각이었다. 막상 전화를 받고 보니 바로 끊을 수 없었다. 대법원 판례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줘야 했다. 판례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해당 사업장의 경우 어째서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낼 수 없는 것인지 납득시켜야 했다. 결국 12분 동안 통화하고서 이날 나는 휴대폰의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2. 그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주장하는 청구뿐만 아니라 성과급도 근로의 대가로 지급받은 임금인 것이고, 따라서 평균임금에 포함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퇴직금 청구까지 하고 있다. 처음 소장을 제출했던 것이 8년 전쯤이니 꽤 오래 묵은 사건이다.
2013년 12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뒤에도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사업장이었다. 주변에 많은 사업장에서 이미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통상임금 소송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조합원들의 요구에 노조 집행부가 소송하겠다고 찾아왔다. 문제의 재직자 조건 상여금이었다.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 해석에 따라 사용자는 해당 사업장의 상여금은 지급시 재직 중인 자에게만 지급하고 그 이전에 퇴직한 자에게는 지급하지 않으니 고정성을 결여해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통상임금 소송을 하겠다고 찾아왔던 당시 노조 위원장 아무개는 승소 가능성이 낮아도 소송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위 대법원 판례가 밝힌 통상임금의 개념징표 중 하나인 고정성을 내세워 재직자 조건이 부가돼 있는 상여금 등 임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인데 이런 판례 태도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라서 그에 반하는 주장으로 명백히 법원에서 판결받기 어렵지만, 소정근로의 대가, 즉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지급하는 임금을 통상임금이라고 수없이 주장하고 변론해 왔던 나로서는 법리적으로 도저히 수긍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부딪쳐 깨트려야 했다. 그렇게 조합원과 노조, 그리고 나의 의지로 이 사업장의 소송은 시작됐다. 그 무렵 이미 재직자 조건의 상여금에 관한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한 세아베스틸 등 몇몇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워낙 조합원들의 요구가 거세고 사측이 완강하다며 소송 말고 다른 수가 없다며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소송이었는데 법원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거기다 성과급까지 평균임금에 포함된다는 판단도 받았다. 이 성과급 부분은 당초 노조가 청구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을 급여자료를 검토하면서 내가 제안해서 청구하게 됐다.
소장을 작성하고 1심에서 준비서면을 작성해서 진술할 때만해도 통상임금에 관한 청구든 평균임금에 관한 것이든 기대하지 않았지만, 법원 판결을 받게 되면서 원고노동자들은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고정성을 통상임금 개념징표에서 제외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와 재직자 조건의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우리 법원이 판단하게 되면서 승리는 확실해졌다. 그래서 기대는 높고 관심도 커졌다. 승소시 자신이 받을 돈을 스스로 계산해 보고 사무실에 자신의 청구금액이 적다고 항의하는 원고들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전화해서 항의했던 것이다.
3. 통상임금이든 평균임금이든 법(근로기준법)적 기준을 내세워 권리 주장을 하는 경우에는 법적 통상임금·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해야 하는 임금(연장, 야간, 휴일근로수당 등 법정수당과 퇴직금)은 법적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취사선택 금지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이 나라 법원이 반복해서 판결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돼도, 그래서 증가된 통상임금 기준으로 산정한 법정수당액보다 가중된 누진률 등으로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더 많은 법정수당을 이미 지급받았다면 법원은 사용자가 더 지급할 것이 없다며 노동자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와 관련해 성과급이 임금으로 인정돼 평균임금에 산입될 경우 누진제로 퇴직금을 지급했다면 그 누진 정도에 따라서는 법적 기준인 단수제로 성과급을 포함해 산정하게 되는 퇴직금액 보다 큰 금액을 지급받았을 수 있다. 이때 만약 평균임금을 법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으로 정하고 있다면 달라진다. 이때는 이러한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을 내세워 성과급을 포함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누진제 퇴직금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거의 대부분 사업장에서 그렇지 못하다. 어떤 임금항목들이 평균임금에 포함되는지 구체적으로 정해 놓고 있다. 그렇지 않고 법적 평균임금에 의한다고 정해 놓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니 법원이 성과급을 평균임금이라 판단해 줘도 이 나라에서 누진제 등으로 법적 기준보다 더 받았던 노동자들은 지급받을 퇴직금이 없는 것이다. 내게 전화해서 항의했던 노동자처럼. 이런 경우까지도 법원이 노동자의 임금권리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석해 성과급까지 포함해서 누진제로 퇴직금을 더 지급하라고 판결해 준다면 노동자로서는 내게 전화해서 항의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의 법은 노동자 맘대로 취사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법리적으로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4.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가진 권리를 가지고 사용자와 협상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해서 사용자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일이다. 조합원에게 기존에 가진 노동자 권리보다 향상된 것을 권리로 쟁취해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노동자 권리를 포기·삭감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헌법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서 노동자에게 단결권,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했다(33조1항). 법률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및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목적이어야 노동조합이라고 정의했다(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4호). 어디서도 조합원이 가진 권리를 삭감하도록 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노동조합은 법대로 행동해야 한다.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서, 즉 조합원이 가진 권리를 삭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리의 확대 혹은 새로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은 존재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노동조합의 일은 조합원이 가진 권리를 삭감·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이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다시 살펴보자.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았고, 성과급을 평균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다. 분명히 노동조합은 권리의 포기가 아니라 쟁취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법이 정의하고 있음에도 그래 왔다. 그래서 법을 내세워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고, 성과급을 평균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이 나라 노동자들은 소송해 왔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단체협약과 회사 제규정 등 취업규칙을 읽어 보면 절망적이다.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으로는, 노조가 동의해 온 취업규칙으로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일 수 없었고, 성과급은 평균임금일 수 없었다. 노조의 합의와 동의가 조합원의 권리를 부정하고 짓밟았다. 어디 통상임금과 평균임금만이겠나. 수많은 노동자의 권리가 그랬다. 조합원의 권리를 삭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정의를 비웃고 활동해 왔던 것이다. 국민주권정부라면 지지율을 믿고서 국민주권 배신자들을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엄중히 규명하고 심판하는 걸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조합원을 위해서 존재하는 노동조합이 노동자 권리 포기·삭감으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 권리 쟁취가 노동조합이 할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