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이번 대통령선거일에 나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참석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머물고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후 ILO 관계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덕담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이 곧 되었으면 한다는 인사였다. 하지만 나는 확신을 갖고 답변할 수 없었다. 대선 기간 중 이미 민주당의 공약이 ‘기업 살리기’로 쏠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문재인 정권에서 노조법 2조 개정이 거부당했던 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 생각하기도 싫지만, 노조법 개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효과를 상쇄할 만한 논의가 정부·여당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노조법 2조의 ‘사용자’ 정의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시키되, 사용자성과 단체교섭사항에 관한 판단징표·기준을 하위법령에 구체화하고, 원·하청 간 교섭에 관한 교섭절차·체계도 마련한다는 안이 최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 명시되기도 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와의 단체교섭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5년간 특수고용 노조들의 불굴의 투쟁으로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특수형태노동자들의 노무를 사용하는 사업주들과 교섭하고 단체협약도 체결해 왔다. 학습지교사, 화물운송노동자, 건설기계노동자, 택배노동자, 대리운전노동자, 배달노동자, 가전통신서비스노동자 등은 이미 단체협약을 통해 산업 내 노동기준을 수립하고 법이 제공하지 못하는 보호를 실현해 왔다.

하청·용역 노동자의 경우에도, 비록 원청이 단체협약에 서명하도록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고용보장, 노동조건, 안전을 사실상 좌우하는 사업주를 상대로 투쟁해 문제를 해결해 온 사례들이 많다. 오히려 최근의 법적 쟁점은 노조의 요구사항에 대해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가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현대제철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산업안전, 차별시정, 불법파견 해소, 자회사 전환을 요구한 데 대해 산업안전만을 교섭사항으로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대표적이다.

우리 법제는 단체교섭에 관하여 ‘사용자’의 범위 이외에도 교섭의 주체, 교섭사항, 절차에 관한 수많은 제한 규정을 이중삼중으로 두고 있다. 게다가 법률에 명시적 근거가 없는데도 법원은 교섭사항·절차에 대한 수많은 제한을 추가해 왔다. 이른바 ‘인사·경영상 사항’에 대하여는 단체교섭 의무도 없고 쟁의행위도 할 수 없다는 판례가 대표적이다. 2010년 노조법 개악 이후에는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사업장 단위의 교섭만을 허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동원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체교섭을 제재하고 있다.

이미 2006년부터 ILO는 한국의 건설노조, 하청노조, 화물연대본부 등에 대한 결사의 자유 침해 사건에서 “단체교섭 사항을 결정하는 주체는 당사자들이어야” 하며 “당국이 단체교섭 대상사항의 범위를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는 98호 협약과 상충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리고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한 노조가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사업주와 단체교섭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수차례 권고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난 정권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조법 2조 개정안은 우리 사회와 노동위원회, 법원에서 이미 축적돼 온 기준을 제한적으로 명문화한 법안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제한적 법안에 더해 하위법령을 통해 ‘근로조건’, 단체교섭의 절차, 원·하청 교섭의 방식에 대한 특정한 내용을 추가한다면, 현재의 관행보다 오히려 단체교섭을 더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1997년 제정 노조법이 복수노조 금지규정은 표면적으로 삭제했지만 2010년 창구단일화 규정을 통해, 당시 싹을 틔우고 있던 초기업단위 노동관계 형성을 가로막은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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