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건영 메타보이스㈜ 대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체계적 도구는 ‘설문 조사’다. 많은 사람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그 응답을 수치로 요약해 표와 그래프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이면에 숨겨진 이유, 갈등, 욕구, 그리고 무의식적 감정들이다. 그런 것들을 탐색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정성조사’(qualitative research)다.

정성조사는 표본을 충분히 크게 잡아 대표성을 확보하려는 정량조사(quantitative research)와 달리,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층적인 내용으로 대화하거나 관찰하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구체적인 응답들에 대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맥락에서 그렇게 행동하는지, 말하지 않은 감정과 욕구는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정성조사의 대표적 방법과 사례

정성조사의 방법론으로는 심층 인터뷰(in-depth interview),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참여 관찰, 사례 연구, 문화기술지(ethnography) 등이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심층 인터뷰는 깊이 있는 주제를 놓고 한 사람과 일대일로 진행한다. 표면적인 답을 넘어 인터뷰이의 경험과 맥락을 드러내도록 깊게 들어간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는 8명 전후의 인원이 모여 특정 주제를 토론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도출되는 의견의 다양성과 상호작용을 관찰한다. 참여 관찰은 실제 현장에 직접 들어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 도시의 공원 재생 사업에서 ‘정량적인’ 설문조사 결과 “80%가 공원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나왔다고 하자. 그러나 ‘정성적인’ 인터뷰 조사를 통해 사람들이 “야간에는 불안해서 못 나간다” “어린아이들과 즐기기에는 다양한 시설이 부족하다” “앉아서 쉴 그늘이 없다” 등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했다고 하자. 결론적으로 정량적인 조사 결과는 ‘만족’이라는 내용을 담은 ‘숫자’를 제공해 주지만, 정성조사는 그 이상의 통찰을 줘서 의사 결정 책임자가 보다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 기업에서도 정성조사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모 글로벌 식품 회사에서는 새로이 출시할 신제품의 포장을 개선하기 위해서 타깃 소비자를 대상으로 FGI를 실시한 바가 있다. 참여자들은 기존 포장을 직접 만져 보고 열어 보며 편리한 점과 불편한 점을 이야기했고, 그런 과정에서 모더레이터(조사 진행자)는 참여자들의 세부적인 표정과 몸짓을 포함해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 결과 의뢰자인 회사는 디자인을 바꾸는 단순한 과업을 넘어 소비자의 손에 닿는 촉감·질감과 손잡이의 구조를 개선해 시장에서 크게 호응을 얻은 바가 있다.

이상과 같이 정성조사는 숫자 배후의 (어쩌면 놓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면의 통찰을 끌어내며 정책, 마케팅, 서비스 개선, 조직문화 연구 등 많은 분야에서 활용된다.

정성조사의 한계와 도전

당연하지만 정성조사에도 한계는 있다. 표본이 적어 일반화가 어렵고, 조사자의 주관이 개입되기 쉽다. 예컨대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더레이터 또는 퍼실리테이터가 특정 방향으로 결과를 유도하거나 매우 중요한 맥락인데 간과한다면, 그 인터뷰 결과가 실제와 다르게 왜곡될 수도 있다. 또한 정량조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고도로 훈련된 조사자 역량이 필요하다.

매우 신속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현대 사회 환경에서는 ‘비싸고 느린’ 정성조사가 수많은 중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예컨대 정성적 데이터와 정량적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는 혼합 연구(mixed methods),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는 ‘온라인’ FGI와 ‘화상’ 심층 인터뷰, 빅데이터·소셜미디어 분석 등과 같은, ‘가성비 제고형’ 조사 방법을 도입해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정성조사의 미래는 기술과의 융합

향후 정성조사는 기술과 결합해 더 진화할 것이다. 예컨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활용해 소비자가 가상의 매장에서 쇼핑하거나 가상의 공간을 체험하면서 반응을 관찰하는 조사라든가, 표정·시선·동작을 분석해 생각·감정을 읽어 내는 생체신호 기반의 정성조사라든가, AI를 활용해 수많은 인터뷰와 영상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는 자동화 기법 등은 이미 어느새 우리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디지털 환경에서 사람들의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커뮤니케이션·액티비티 데이터를 수집하는 ‘디지털 민속학’(Digital Folkloristics) 또한 대두되고 있다. 예컨대 온라인 커뮤니티의 댓글, 사용자 후기, 유튜브 관련 포스트를 수집·분석해 온라인에서 그들이 어떤 표현과 감정으로 특정 사안에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참여자들의 다소 인위적일 수 있는 답변보다 더욱 솔직한 생각을 다양하게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본질은 역시 사람

과학기술은 끊임없이 진화 발전하고 있고 인류의 삶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정성조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 표정, 심지어 ‘침묵’ 속에서도 그 안에 담긴 맥락과 의미를 읽어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근원적 이유’를 밝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서 사람과 사회를 더욱 더 깊이 이해하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지금의 정책이 효과적인가’가 아니라, ‘이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무엇을 더 만들어 팔까’가 아니라,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숫자는 빠르고 명확하며 직관적인 결과를 보여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여전히 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의식적 표정과 숨겨진 맥락까지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성조사는 더 깊은 통찰과 더 나은 결정을 위한 기반을 제공한다. 또한 향후의 정성조사는 더욱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방법으로 의사결정자의 선택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 안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읽고, 공감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박건영 메타보이스㈜ 대표 (proband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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