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최고행정법원은 지난 5월 시장점유율 1위인 배달앱 볼트(Wolt)를 통해 일하는 배달노동자(라이더)를 자영업자가 아니라 ‘근로자’로 분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결정은 지난해 “라이더는 자영업자”라고 판시했던 하멘린나 행정법원의 1심을 뒤집은 것으로, 플랫폼 기업의 책임 강화와 노동자 보호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핀란드 최고행정법원은 볼트와 라이더 간 관계가 표면적으로는 자영업자 계약으로 포장돼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고용관계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볼트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지시하고 감독하며, 품질 기준을 설정하고 작업 배분과 평가 등에서 상당한 통제력을 행사한다고 봤다. 라이더가 근무시간과 장소를 일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이러한 자율성은 형식적이고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은 라이더의 불규칙한 근무시간과 같은 특수성을 고려해 근로시간법(Working Hours Act)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핀란드 고용계약법상 고용관계로 인정되지만 다른 직장처럼 근무시간을 고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이번 판결은 플랫폼 노동자도 실질적 고용관계가 성립하면 근로자로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앞으로 약 1만명에 달하는 핀란드 내 볼트 라이더가 근로자성을 인정받게 된다면 이주민·청년 등 플랫폼 노동에 많이 종사하는 계층이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를 벗어날 수 있다. 또 핀란드 최고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우선 추정하는 EU 플랫폼 노동 지침(Platform Work Directive)과도 방향성이 일치한다.
그런데 판결이 나오고 나서 볼트의 대응이 특이하다. 운영모델을 즉각 변경하는 대신, 라이더에게 앞으로 ‘근로자’로 일할지 아니면 기존처럼 ‘자영업자’로 일할지 선택하라고 제안한 것이다. 근로자를 선택한 라이더에게는 사회보험료와 복리후생비를 사쪽에서 부담하는 대신 배달 수수료의 65%만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를 선택하는 라이더는 배달 수수료를 100% 지급받고 각종 세금과 보험료, 장비 유지비는 기존처럼 자체 납부하라고 안내했다. 최종적인 수입은 비슷하겠지만 ‘근로자’를 선택할 경우 근무 방식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볼트가 이렇게 100%냐 65%냐라는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사실은 부적절한 일이다. 법원에서 볼트와 라이더의 관계가 고용관계라고 판결했는데 라이더의 선택이라는 명목으로 자영업자 모델을 유지할 경우 법 위반 소지가 있다.
또한 ‘근로자’ 모델과 ‘자영업자’ 모델의 차이는 수수료가 몇 퍼센트냐에 국한되지 않는다. 라이더가 법적으로 자영업자일 경우 볼트는 일방적으로 라이더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배달 운임을 하룻밤 사이에 삭감할 수 있다. 실제로 볼트가 도어대시에 인수된 뒤에 운임이 삭감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라이더가 근로자로 인정받는 경우 임금은 단체협약 또는 고용계약으로 정해지므로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삭감할 수가 없다. 또 근로자는 법에 정해진 공휴일 수당이나 유급휴가, 퇴직금 등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부당한 해고로부터 보호받는다. 볼트는 이런 설명을 회피하면서 라이더에게 65%와 100%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만 하고 있다.
핀란드 배달앱 시장은 볼트와 푸도라(Foodora)가 약 95%를 점유하는 과점 상태다. 시장점유율이 약 60%인 볼트는 핀란드 스타트업으로 출발해서 2022년 미국의 도어대시에 인수됐고, 볼트의 경쟁업체인 푸도라는 2015년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가 인수했다.
푸도라 역시 이번 판결에 따라 라이더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운영모델을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런데 푸도라는 스웨덴·노르웨이 등의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근로자’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핀란드 최고행정법원의 라이더 근로자성 인정 판결이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똑같이 딜리버리히어로의 자회사로서 음식배달 사업을 하더라도, 각각의 자회사가 소속된 나라의 법·제도에 따라 운영모델이 다르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는 라이더가 자영업자인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라이더도 ‘근로자’로서 사회보험과 유급휴가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한국도 플랫폼 기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늦어지면 ‘노동 후진국’이 되고 만다.
안진이 the삶 대표 (livewithall@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