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라는 영화가 있다. 경험 많은 퇴직자가 시니어 인턴으로 고용돼 젊은 CEO를 돕는 헐리우드 영화다. 전주지역에도 건강보험공단을 퇴직한 노동자가 자신의 경력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주간보호센터에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를 했다. 센터장은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했지만 업무 능력이 뛰어나 이 노동자를 사무장으로 재고용했다. 여기까지는 영화 인턴과 비슷하다. 개업한 지 1년 정도 됐지만 자리를 못 잡던 업무들이 사무장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센터장의 욕심은 하늘을 찔렀다. 이미 공단으로부터 보장된 이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했다. 간호업무를 맡은 직원 혼자 세 명의 어르신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도록 하고선 마치 세 명의 직원이 각각 어르신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것처럼 해 공단에 급여를 청구하고, 직원들과 차량 임대 계약을 하고 직원차를 이용하면서 약속한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는 등 셀 수도 없었다. 보다 못한 사무장은 센터장에게 ‘이윤도 좋지만 적당히 하고 직원들 처우에 신경 쓰라’ 했고 센터장은 그런 사무장의 충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더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참지 못한 직원들이 사무장과 함께 직장협의회를 만들었다. 센터장에게 대화를 요구했고 노사합의문까지 작성했다. 하지만 합의문 작성 후 센터장은 다시 돌변해 직장협의회 부의장을 계약 만료를 이유로 계약해지 통보했다. 직원들이 반발하자 사무장을 배후로 몰아 해고했다.
직장협의회 부의장은 본래 센터장과 친분이 있던 사이로 억울했지만 조용히 퇴사를 했다. 모두 계약직 신분으로 센터장의 횡포에 협의회는 산산이 흩어졌다. 노동조합도 아니고 직장협의회를 구성해 노사협의를 요구한 대가가 계약해지와 해고라니. 해고된 노동자는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통해 복직 판결을 받았지만 계약 만료를 사유로 또다시 계약해지를 당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만들어지고 장기요양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비정규직에 최저임금 수준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까지는 아니더라도 노사협의회라도 의무화돼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공단이 3년마다 장기요양기관 정기감사를 하는데 감사의 내용에 센터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노사협의회 구성과 노동자 평가 제도가 있다면 현장이 어떻게 바뀔까.
노동조합이 없는 현장에서 노사가 공식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노사협의회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은 노사가 참여와 협력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게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30명 미만은 설치가 의무가 아니다 보니 30명 미만 사업체 중 노사협의회를 구성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간위탁 사업장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포기하면서 민간위탁 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30명 미만일 경우도 노사협의회를 두도록 했지만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내가 일하는 비정규직센터도 아직 노사협의회가 없다.
일터 민주주의의 첫 번째 관문은 노사가 동등한 입장에서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토론의 장에서부터 시작한다. 형식적인 노사협의회가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일단 법적 의무로 만들고 그 제도를 통해서라도 노동자들이 자신을 스스로 대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인권의 목표는 자력화가 아닌가.
작은 직장의 권위주의는 인권의 문제를 넘어선다. 사회서비스업이 주류인 한국 사회에서 직장내 인간관계 수준이 곧 서비스의 질이고 서비스의 질이 생산성이기 때문이다.
6월4일 새 정부가 들어섰다. 탄핵 정국에서 전북 교육청에 강의를 온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광장 민주주의와 일터(상) 민주주의의 괴리”라 표현했고, 어떤 이들은 “정치민주주의의 성숙과 경제민주주의의 미성숙”이라 한다. 그렇다면 일터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그 첫 단추가 모든 노동자에게 노사협의회 전면 적용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