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한국도 드디어 녹색산업정책을 본격적으로 펼 모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미국·중국 등 주요국들이 강력한 산업정책을 시행하며 발 벗고 뛰는데, 우리는 그 필요성을 따져보기 위한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도입을 위한 내부 검토에 착수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구체적인 산업 및 경제 안보전략 수립 없이 일부 업종의 세금 감면에만 초점을 맞춘 게 ‘정책 실기’라고 뒤늦게 성찰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2022년 전격 도입한 IRA가 뭔가. 비록 원래 계획보다 대폭 축소되기는 했지만, 기후 대응을 위한 국가적 비상 프로젝트의 상징인 ‘그린뉴딜’을 법제화시킨 것이다. 동시에 탄소가격 등 시장 메커니즘에 기후 대응을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비전을 제시하고 공적 투자에 나서며 규제와 인센티브를 통해 녹색산업을 조직하겠다는 게 IRA의 핵심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공약을 통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및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산업법’ 제정을 예고했다. 이제까지 이를 무시해 왔던 산업통상자원부가 정권이 바뀐 상황변화에 부응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하지만 짚어 볼 대목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판 IRA에는 에너지전환만이 아니라 AI까지 포괄해서 담길 전망이다. 하지만 이 경우 에너지전환이나 녹색산업은 그저 AI의 들러리 정책으로 격하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2022년 8월 IRA를 제정하던 시점에, 별도의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과 행정명령으로 실행된 ‘국가 생명공학과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가 병행적으로 추진된 사례를 기억해 봐야 한다. 한국 역시 반도체법과 녹색산업법은 별개로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녹색산업정책의 유일한 사례가 IRA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지금 미국의 IRA는 트럼프의 ‘크고 아름다운 법’의 통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2019년 최초로 유럽의 그린딜을 천명하고 시행에 들어갔던 유럽이 미국 IRA에 맞대응하는 성격으로 2023년 발표한 ‘유럽 녹색산업계획(European Green Industrial Plan)’과 이를 입법화한 ‘넷제로산업법’ ‘핵심원자재법’을 참고해 볼 필요도 있다.

유럽의 넷제로산업법은 재생에너지를 핵심으로 하는 8대 녹색 핵심기술을 집중 지원하고, 2030년까지 탄소중립 전략산업 제조역량을 EU 연간 수요의 40% 수준까지 끌어올리자고 제안하고 있다. 또한 공공입찰 절차에서 지속가능성과 공급망 안정성 기여도를 반영하고, 법안 이행을 감독할 ‘탄소중립 유럽 플랫폼’ 설립을 명시한 점도 주목된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녹색산업정책의 본거지는 아시아의 중국이다. 아직 미국을 추격 중인 디지털 분야와 달리, 중국은 태양전지·풍력터빈·배터리·전기차 등 녹색 분야는 공급망의 전주기와 핵심기술과 자원까지 모두 장악하며 글로벌 지배력을 확고히 굳히는 중이다. 그 결과 지난해 주요 녹색산업이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뤘고 성장률의 4분의 1을 기여할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 이제 중국에서 녹색산업은 경제의 핵심 기둥으로 우뚝 선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GDP의 10%에 근접한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라. 녹색산업으로 중국은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 수단은 물론, 미래 산업전환의 중심을 구축하게 됐다.

녹색산업에서 중국의 놀라운 부상은 트럼프 정부 이후 화석에너지로 되돌아가는 미국의 역사적 후퇴와 대조되면서, 최근 서구의 주요 언론마저 이 특이상황을 주목할 정도가 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5월 중국이 재생에너지의 폭발적 성장을 토대로 모든 에너지를 전기화하는 ‘전기국가(electrostate)’라는 역사적인 미래를 개척하는 동안, 셰일가스에 의존해서 단기적인 이점을 누리는 미국은 20세기 ‘화석국가(petrostate)’에 머무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발 더 나아가서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30일자 기사를 통해 미국이 화석경제에 머물러 안주하는 동안, 중국은 청정에너지 기반의 경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데 과연 미래는 누구의 편이 될 것인지 질문하고 있다. 이 질문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인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준비해서 곧 내놓을 녹색산업정책이 그 해답이 될 것인지 지켜보기로 하자.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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