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헌법재판관 겸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상환(59) 전 대법관이 판사 시절 ‘친노동’적 판결을 잇따라 선고해 주목된다. 김 전 대법관의 헌재소장 임명시 노동관계법령에 관한 헌재 판단에도 기류가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산업안전보건 관련 형사사건에서도 전향적으로 판결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성을 심리하고 있는 헌재 판단에도 향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산재유족 특별채용’ 단협 정당” 전합 판결

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김상환 헌재소장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 임금·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불법파견 등 노동 관련 소송에서 노동 친화적인 판단을 내놨다. 김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12월 대법관으로 임명된 뒤 지난해 12월까지 6년간 대법관을 지냈다.

김 후보자의 대표적인 ‘노동 판결’은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로 숨졌을 경우 유족을 채용하도록 정한 단체협약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2020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김 후보자가 주심을 맡았다. 당시 대법원은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다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업무상재해로 인한 사망과 6급 이상 장해 조합원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고 정한 단협 조항이 정당하다고 판단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1·2심은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민법 103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에 위배된다며 유족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관 13명 중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을 포함한 11명은 특별채용 조항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노동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노조가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단협 시정명령을 내린 노동부를 비판하는 등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지엠 불법파견 소송, 하청노동자 ‘손’

‘불법파견’ 소송에서 김 후보자는 원청 책임을 묻는 판결을 이끌었다. 김 후보자가 주심으로 심리한 ‘한국지엠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지난해 7월 한국지엠 1차 하청업체의 서열·보급 업무 담당 노동자 2명에게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하청노동자들이 한국지엠의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컨베이어벨트 생산라인에 맞춰 조립부품을 제공하는 서열업무 같은 ‘간접공정’도 원청의 생산계획에 구속된다고 봤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관련 사건에서도 전향적인 판단이 이뤄졌다. 지난해 3월 김 후보자가 주심을 맡은 ‘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공고 이의신청 사실의 공고에 대한 재심결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중노위가 ‘교섭요구 사실 공고 절차 없이 교섭요구 노조 확정 공고’를 주문할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다퉈졌다. 대법원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관한 노조법 규정은 강행규정이므로, 교섭요구 노조 ‘확정’ 공고 이전에 ‘사실’ 공고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사용자가 노조에 교섭요구 ‘사실’ 공고 없이 교섭요구 노조로 ‘확정’됐다는 사실만 공고하라는 시정명령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상환 전 대법관. <대법원>
▲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상환 전 대법관. <대법원>

도급인 기준 세운 판결에 중대재해법 위헌여부 ‘촉각’

이른바 ‘비정형 노동자’ 사건에서도 김상환 후보자는 노동조건을 꼼꼼히 따졌다. 지난해 3월 영어강사가 학원장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 2부는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영어강사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려고 위임계약을 희망한다는 내용으로 서류를 꾸민 원장의 상고를 기각했다. 강사 지위 신청서에 ‘근로자 지위’와 ‘위임(자유직업소득자)’ 중 후자를 희망하는 것으로 적혔더라도 실질적인 근로형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였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김 후보자는 △특수고용직인 ‘카마스터’가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무실 출입을 제한한 자동차 판매 대리점주에게 벌금형을 확정한 판결(2024년 2월) △경비원에게 세차 업무를 지시해 직장내 괴롭힘이 인정된 경비업체에 정신적 손해배상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결(2024년 4월) △하루 12시간 근무했는데도 연장·야간근로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야채 도소매업체 직원에게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2024년 9월) 등 노동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았다.

특히 도급인-발주자 기준을 세운 ‘인천항만공사’ 사건은 파급력이 컸다. 주심은 아니지만 김 헌재소장 후보자도 심리한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해 11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준욱 전 인천항만공사(IPA)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공사를 도급하는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재 예방과 관련된 유해·위험요소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했다면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이 △유해·위험요소에 대한 실질적 지배·관리 권한 여부 △도급 사업주의 실질적 영향력 정도 △도급 사업주의 공사 전문성과 시공능력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 체계나 입법 경위 등을 도급인 판단기준으로 제시하면서 건설업계 위주로 큰 파장이 일었다. 도급인 지위가 쟁점이 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사건이 많아 현재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심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 “노동 3권 등 헌법상 기본권 충실 기대”

법원행정처장 재임 기간인 2023년 6월에는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엄격히 제한해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비판한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사실상 직격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당시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재판부를 구성하는 특정 법관에 대해 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지난달 26일 이재명 대통령이 지명했다. 이 대통령은 “헌재 헌법연구관과 대법관을 역임한 법관 출신으로 헌법과 법률 이론에 해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며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헌법 해석에 통찰력을 더해줄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김 후보자는 2002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4년간 헌재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했다. 헌재 재판관을 지낸 서울의 한 로펌 소속 A변호사는 “김 헌재소장 후보자가 헌법연구관 근무 당시 발표한 논문 등을 보면 법률 위헌 심사 단계에서 헌재의 중요성을 피력했다”며 “노동 3권을 포함한 헌법상 기본권에 충실한 심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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