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대리하는 공인노무사가 되겠다는 결심한 이후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다. 노동자의 편이 돼주자. 사건을 진행하면서 노동자의 주장이 흔들리거나 그가 말한 내용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노동자를 믿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자.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노동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마음먹었다. 이런 생각만으로 정말로 노동자의 편이 될 수 있으면 좋았겠건만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생각만큼 다짐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보험료가 많이 들어서 그런데 4대 보험 안 들면 안 돼요?” “아르바이트인데 주휴수당 없이 일할 수는 없나요?” “회사에 이야기하지 않고 직장내 괴롭힘을 해결하고 싶어요.”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런 말을 사용자에게 들을 때는 어쩐지 나도 자신감 있게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주휴수당은 법적으로 요건이 충족되면 반드시 지급해야 해요”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조사를 해야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노동자에게 들으면 왜인지 마음이 약해진다. “월급이 많지도 않은데 보험료 내면 받는 돈이 적어져서 3.3% 계약을 하고 싶어요.” “알바자리가 부족한데 최저임금에 주휴수당도 안 받는 조건이라면 채용해 준대요.” “회사가 한통속이라 괴롭힘을 당했다고 해도 안 들어줄 것 같아요, 어차피 안 되는 거 그냥 포기해야죠….” 각자의 노동자들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부당한 일을 신고하려니 시간과 돈이 들고, 법적 절차도 생각만큼 쉽게 진행되지 않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사건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떠오를 터. 이런 사정들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말하던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은 알겠지만…”하며 마음이 약해진다.
노무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공인노무사법에 따르면 노무사는 △노동관계 법령에 따라 관계 기관에 대하여 행하는 신고·신청·보고·진술·청구 및 권리 구제 등의 대행 또는 대리 △노동관계 법령에 따른 서류의 작성과 확인 △노동관계 법령과 노무관리에 관한 상담·지도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사업이나 사업장에 대한 노무관리진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52조에서 정한 사적 조정이나 중재 그리고 사회보험 관계 법령에 따라 관계 기관에 대해 행하는 신고·신청·보고·진술·청구 및 권리 구제 등의 대행 또는 대리를 한다.
공인노무사법은 노무사가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지 정하고 있지만, 어떻게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리인은 어떻게 대리를 해야 하는가. 대리(代理)란 누군가를 대신해 일을 하는 것인데, 말 그대로 노동자 대신 노동청이나 근로복지공단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인가, 아니면 노동관계 법령을 잘 이해한 자로서 적절히 상담하고 지도해야 하는 것인가. 어떤 측면에서는 노무사가 법에 따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노무사에게 법원의 판사, 노동위원회의 공익위원처럼 판단하는 역할이 부여된 것인지, 만약 그 역할이 부여됐다면 과연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노동자가 원하지만 법률에 저촉되는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을 위반하더라도 몰래 진행하라고 할 것인가? 노동자가 원하는 대로 진행했을 때 오히려 노동법을 폄훼하거나 노동인권에 역행한다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한편으로는 노동자가 포기하려고 하는 사건을 법 위반이라며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노동자를 위한 일일까? 애초에 노동자가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면 법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 노무사는 노동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고, 해도 괜찮은가? 무엇이 노동자를 위한 것이고 어떤 것이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것인가?
많은 물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노동자의 편에 서고 싶은 노무사다. 노동자의 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러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아직 답을 찾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노동자에게 쓰게 말할 필요도 있고, 어떤 때는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하고, 짐짓 엄하게 판단할 수도 있고, 혹은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무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물음은 결국 한 곳으로 향한다. 답이 없으므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혹은 이렇게 바꿔 볼 수도 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