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물감 묻힌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문질러 표현하는 방식이다. 어린 시절 미술시간에 한 번씩 해봤을 테다. 파란색, 빨간색만으로는 밋밋했다. 노란색만도 그렇다. 빨주노초파남보 물감 아낌없이 짜내어 가지각색 무지개를 찍는 아이들이 많았다. 알록달록 번지고 섞인 색상들이 참 예뻤던 기억이 있다. 사진에서도 흔히 쓰는 표현 방식이다. 해질녘 호숫가에 비친 산과 나무는 풍경 사진의 단골 소재였다. 대칭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아름다움이 집중도를 높인다고 한다. 종종 붉은 머리띠 맨 노동자들이 눈 녹은 물 고인 웅덩이를 오체투지로 지나는 장면을 찍을 일이 있었다. 치열한 싸움 장면에서도 보기 좋은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건 사진의 쓰린 숙명이다. 대선 막바지, 거친 말들이 칼처럼 날아 치열한 싸움이 한창이다. 끝 간 데 없이 치졸한 공격이 이어져 지켜보던 시민들은 참담했다. 선거의 쓰린 숙명이라기엔 혐오가, 상처가 깊다. 저기 성평등 노동 실현 목소리 내려 길에 선 노동자들이 대통령 후보자의 막말 만행을 규탄했다. 한편 ‘대학 못 간 여성’ ‘찐 노동자’를 향한 어느 엘리트 작가의 말에 사람들이 오늘 또 아팠다. 차별과 멸시, 비하는 과연 선 자리를 가리지 않았다. 데칼코마니 양쪽처럼, 똑같지는 않아도 많이 닮아 있다. 차별금지 팻말 든 저들이 광장에서 죄도 없이 벌쓰는 일이 잦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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