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공공부문부터 산업·업종 단위의 단체협약 모델을 구축하고, 기존 노조가 체결한 단협효력은 자동 또는 행정명령으로 확장시키는 내용의 노동공약을 꺼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노동시장 양극화를 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체적인 교섭단위나 단협 효력확장 범위 등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란 지적이 병존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임금분포제로 판 깔기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28일 오전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정책공약집을 발간하고 “산업·업종·지역단위 단체교섭·협약 모델을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의 정책공약집은 회복·성장·행복 카테고리로 구성되는데, 노동공약은 행복의 하위주제로 들어갔다. 공약 이름은 ‘노동존중 및 권리보장’이다.

노조 조직률이 낮은 한국에서는 단체교섭이 사업장 안에 갇히지 않아야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향상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노동계도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과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며 산별교섭 법제화를 요구해 왔다.

이 같은 요구는 국가·지자체, 공공기관이 모범적 사용자로 산업·업종 단협 모델을 먼저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반영됐다. 산업·업종 교섭 활성화를 위해 교섭권도 법으로 보장한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해서다. 산업·업종 교섭 활성화에 활용할 수 있는 노동조건 가이드라인은 임금분포(공시)제로 마련한다. 근속·직무·직급 등의 임금 정보를 공공 데이터로 만들어 공시해 노사에 교섭 동기를 부여하려는 구상으로 보인다.

노동계 “큰 진전, 업종·산업 구속력도 넓혀야”

민주당은 노사가 단체교섭을 통해 맺은 단협의 효력을 다른 노동자에게 적용할 방안으로 자동 또는 행정명령에 의해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현행 노조법은 단협 효력확장을 일반적 구속력과 지역적 구속력으로 나눠 정의하고 있다. 지역적 구속력이 적용되려면 한 지역에서 일하는 동종 노동자 3분의 2 이상이 하나의 단협적용을 받을 때 행정관청이 노동위원회 의결을 얻어 단협 효력을 지역 전체로 확대한다.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동종 노동자 3분의 2 이상이 하나의 단협적용을 받을 경우 행정관청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단협의 효력을 확장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부가 행정명령을 통해 단협 효력을 확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노조법에 관련 조항이 없어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취지는 좋으나 노조법 개정의 구체적 내용이 관건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산별교섭 제도화 대신, 실질적으로 산별교섭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고, 큰 진전이라 본다”면서도 “실제 미조직 노동자에게 얼마나 혜택이 갈지는 초기업교섭의 단위나 단협 효력 확장 조건 설정을 봐야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주호 고려대 노동대학원 선임연구위원도 “정부가 관장할 수 있는 공공부문부터 먼저 초기업교섭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진정성에서 점수를 줄 만하다”면서도 “현재 단협 효력확장은 일반·지역적 구속력밖에 없는데 업종·산업 구속력도 포함해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동법 밖 비정형 노동자 보호
권리보장기본법 제정, 근로자추정제 도입

노동법 밖에 있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해 ‘일터 권리보장을 위한 기본법’을 제정해 권리보장을 명시하겠다는 보안이다. 기본법에는 △차별이나 괴롭힘을 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노동할 권리 △수행한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받을 권리 △임신과 출산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보호 및 지원받을 권리 △고용보험·산재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등이 담긴다.

권리를 나열한 기본법이 제정되면, 각각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도 법으로 정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를 각각 개별 입법을 통해 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가령 특수고용 노동자가 안전하게 노동할 방안을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하는 식이다. 개별 입법 방식이기 때문에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세부적 방향이나 재원 마련책이 나올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 내용들을 기본법에 모두 담게 되면 소위 법의 ‘사이즈’가 비대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작은사업장 근기법 적용은 ‘단계적’

비정형 노동자에게 신경을 쓴 흔적은 곳곳에서 보인다. 민주당은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일단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추정하는 ‘근로자추정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할 책임은 사용자에게 부여하겠다는 얘기다. 사용자가 무엇을 입증해야 할지는 추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안전과 관련해서는 ‘전 국민 산재보험제’를 공약으로 따로 내놨다. 업무상 재해 위험이 높은 자영업자까지 산재보험 제도를 도입하고, 농업·임업(벌목업 제외)과 어업·수렵업 중 비법인 상시 근로자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정부 내 노동안전보건 체계를 통합적으로 운영하겠다고도 공약했다. 통합 체계에서는 입법제안·예산 등에 독립적인 권리를 부여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은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는데 상당히 실망스럽다”며 “(단계적이라는 표현을 볼 때) 만약 집권을 했을 때 5명 미만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폐지되지 않고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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