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엔 세 발인 것은 무엇이냐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직 두 발로 서 있어 나는 저녁 어둠을 모른다. 하지만 높은 계단을 오를 때, 앉았다가 일어날 때면 그 시간이 아주 멀지만은 않겠구나 싶어 덜컥 걱정이 스민다. 운동하자 그 말이 쉬워 입에 달고 산다. 시작이 참 어려워 나는 그저 뜀박질 운동화를 오래도록 검색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거북목이 돼 간다. 암 투병 이겨 낸 늙은 아빠가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종종 시골 동네 뒷산에 오른다기에 등산용 지팡이를 사 보내드렸는데, 내 것도 하나 살 걸 후회했다. 스무 살 즈음 만난 친구들이 삼삼오오 주말마다 산에 간다기에, 한때 그들과 70리터 배낭 메고 지리산 종주 길을 내달리던 추억을 꺼내어 수다 떨었다. 하산길에 찾아가 파전과 막걸리 먹을 궁리만 하고 만다. 가성비 지팡이를 찾느라 노안 일찍 찾아와 흐릿한 눈을 자꾸 비빈다. 96~97년 총파업을 회고하던 행사장에서 나는 새파란 청춘이었다. 한때 민중의 몽둥이와 싸우던 뜨거운 청춘들은 이제 낡은 몸뚱이와 싸울 것이다. 곧 지팡이에 기댈 것이다. 그러나 치열했던 싸움이 남긴 것이 선명해, 아직 두 발로 선 청춘들이 오늘 노동조합의 역할을 곱씹게 한다. 대선 한복판, 노조는 저마다의 요구안을 알리느라 줄줄이 길에 선다. 공공돌봄과 공공의료 확충을 말하던 자리에 지팡이 든 노인이 한참을 머문다. 초고령사회, 민중의 지팡이 역할이 중요하겠구나 싶었다. 운동하자, 말하기는 쉬워도 실은 참 어려운 그 다짐을 어깨에 지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안다. 동지처럼 느껴져 위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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