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원에 온 지 8개월이 됐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지는 4년이 됐지만, 그중 대부분은 군법무관으로 복무했던 터라 본격적으로 변호사 일을 한 시간은 이제 겨우 8개월 남짓이다. 그래도 ‘경력 변호사’라는 이유로 법률원 동료들은 나를 믿고 사건을 맡겨주지만, 불안함과 두려움을 감추기는 어렵다. 조합원 동지들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척해야 하기에, 겉으로는 여유 있는 표정을 짓지만, 서면을 한 장 쓸 때마다, 재판을 한 번 나갈 때마다 마음은 늘 흔들린다. 혹시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문장이 어설프지는 않은가, 더 찾아봐야 할 자료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실수로 조합원들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매일매일 노심초사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런 불안 속에서도, 노조사건을 하는 게 참 좋다. 특히 형사사건의 기록을 읽는 순간이 그렇다. 죄를 추궁하는 경찰, 검찰의 질문에 조합원 동지들은 당당하게 대답한다.
“수당이 제때 지급되지 않아서, 원청 찾아갔습니다. 원청사가 도급비를 안 주면 수당이 안 나오는데, 그거 지급하라고 원청사 찾아가서 따지러 갔습니다. 그게 범죄인가요?”
“몇 개월째 교섭도 안 나오고, 노조 한다고 괴롭혀서, 집회하고 항의 표시로 스티커 붙였습니다. 그래도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조 만들려고 하니까, 회사에서 불법적으로 어용노조 만들어서 몇 년간 아무것도 못 하게 했습니다. 소수노조라고 교섭도 못 하게 됐고, 기본적인 것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고 화가 나서, 점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죄라면, 제가 책임지고 제가 벌 받겠습니다.”
형사기록에는 범죄가 벌어지는 특정 시간의 갈등만이 그려진다. 공소장에는 피고인, 피해자, 행위, 시간, 장소가 건조하게 그려지고, 피고인들이 피해자에게 위법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나열된다. 그 기록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나 그들이 빚어왔던 갈등과 서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기록만 보면 조합원 동지들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범죄자로 그려진다. 그런 상황에서 조합원 동지들의 저런 말을 마주하면, 전혀 다른 맥락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생뚱맞지만 저 당당한 선언을 따라가면, 다른 증거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갈등 이면의 사실들이 불쑥 고개를 드러낸다.
조합원 동지들은 자신들이 하는 게 비록 위법하다는 딱지를 맞더라도, 옳은 일을 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수사를 받을 때도 재판정에 나설 때도 당당하게 서서, 조곤조곤 진실을 말한다. 그래서 그 진실에 기대어 서면을 써나간다. 공소장과 증거기록에는 담기지 않은 진실들을 담아서 쓴다. 조합원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회사하고 어떻게 싸우게 됐는가. 다른 선택지 중에 왜 굳이 공소장에 적힌 행동을 하게 됐는가. 그들의 선택과 행동이 겉으로 보기에 위법하더라도, 분명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행동임을 담담히 써나간다.
노조사건을 하는 기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변론이 된다.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정,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노조를 고사시키려 했는지, 사측이 사실을 어떻게 비틀어 진술을 구성했는지를 하나하나 짚어내다 보면, 공소장에 적힌 ‘범죄’는 법정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재구성된다.
물론 그 결과가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쉬운 판결을 더 자주 마주한다. 못내 섭섭하지만, 오히려 조합원 동지들이 더 당차고, 개의치 않아 한다. 내가 나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조합원 동지들은 그런 결과까지 감수하고 선택했기에 기꺼이 법적 책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노조사건을 하는 기쁨에 더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자부심이 된다.
8개월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직 미숙하고 매번 확신이 부족하지만, 법률원과 민주노총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회운동과 거리가 먼 친구들은 내 모습을 보며 의아해한다. 그러나 내게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이곳이 가장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다. 괴롭고 힘들어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치 있게 만드는 투쟁의 현장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