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많은 이가 기다리던 선고가 있었다. 선고를 보며 누군가는 기뻐서 울었고 누군가는 비통해서 울었다. 각기 마음은 다른 의미로 복잡했을지 모르지만 결과야 간명하다. 대통령은 파면됐다.
추웠던 지난해 12월3일 밤에 사당에서 숨죽여 듣던 전투기 소리를 기억한다. 12월 중순 여의도의 찬 바람 속, 여당 의원들 이름을 읊으며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해 돌아오라 외쳤던 동료 시민들의 함성을 기억한다. 행진 중 문득 뒤돌면 끝이 보이지 않게 길었던 행렬과 수없이 나부끼던 깃발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의 시발점이었던 포고령을 기억한다.
2024년 12월3일 윤석열의 계엄포고령 4호는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고 했다. 과거로 거슬러 가서 살펴보면, 1980년 5월17일 전두환의 계엄포고령 2호 라목은 “정당한 이유 없는 직장 이탈이나 태업 및 파업 행위를 일체 금한다”고 했다. 더 거슬러, 1972년 10월17일 박정희의 비상조치(대통령특별선언) 4항은 “정당한 이유 없는 직장이탈이나 태업행위를 금한다”고 명시했다. 1964년 6월3일 계엄사 포고령에도 “직장을 이탈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고, 1961년 5월16일 쿠데타 직후의 비상계엄령에도 “수하(誰何)를 막론하고 직장을 무단히 포기하거나 파괴, 태업을 금한다”는 조항이 있다. 즉 노동자로부터 단체행동권을 빼앗으려는 윤석열의 계엄포고령 4호는 하늘에서 갑자기 점지받은 문장이 아니다. 이는 군부 쿠데타 및 독재의 역사와 전통을 성실히 계승한 조항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윤석열의 계엄포고령이 종래 전두환·박정희의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결정문 86, 87쪽).
단체행동권이 어떤 권리이기에 이렇게 꾸준히 박탈하지 못해 안달일까. 단체행동권은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가 사용자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쉽기 때문에 부여된 ‘뭉쳐서 싸울 권리’다. 한 명의 노동자가 사용자의 부당한 행위에 항의할 때 사용자는 그 노동자를 해고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업장 내 모든 노동자의 항의는 해고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자 개개인은 약하지만 함께 싸워 나갈 때에는 얘기가 다르다. 이러한 단체행동권은 노동자가 합당한 근로조건을 쟁취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에, 대한민국헌법은 제정과 9번의 개정을 거치면서도 언제나 단체행동권을 보장해 왔다.
그렇다면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관계에서 행사되는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왜 군부와 윤석열은 박탈하고 싶어 했을까. 군부의 비상조치나 각종 포고령에 공통적으로 꾸준히 포함돼 있던 다른 기본권 침해 조항은 정치적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과 출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영장주의)다. 모두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서 단체행동권을 박탈하려 한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뭉쳐서 싸울 권리’는 노동자들을 손을 맞잡게 하고, 두려움을 이겨 내게 하고, 강자에게 맞설 수 있게 한다. 노동자들은 연대의 힘을 안다. 독재자들은 그 힘이 사용자를 넘어서 부당한 정권으로 향하는 것이 못내 두려웠던 것이다.
그 두려움은 허황된 것이 아니다. 광장에서 나부끼는 수없는 깃발들은 저마다 함성소리를 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차별과 소외 없는 평등한 세상을 외쳤고, 어떤 이들은 민주공화국의 회복을 꿈꿨다. 어떤 이들은 세상 걱정할 일 없이 방구석에 누워만 있고 싶다며 유쾌한 깃발을 들고나왔다. 그리고 그 많은 깃발들 사이에 노동자들의 깃발이 사라진 적은 하루도 없었다.
그러나 진정 두려워해야 했던 것이 노동자였는가? 노동자들은 투쟁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합당한 근로조건과 근로환경에서 무사히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광장에서 투쟁하게 만들었던 것은 노동탄압과 부당함이었다.
그러니 부디 노동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두려워하라 위정자들이여. 노동자들을 광장에 끌고 나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당신들이라는 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