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미국에 꽤 진심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 자동차 170만대를 팔았다. 이 가운데 100만대는 한국 공장에서 생산했고 나머지 70만대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했다. 앞으로 현대차는 국내보다 미국 생산을 늘린다. 미국 조지아주에 신설한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존 앨라배마(HMMA), 조지아 기아공장(KaGA)까지 합치면 미국 내 연간 생산능력은 100만대에 달하며, 20만대를 추가할 예정이다.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가 나온다. 현대차쪽은 전체 판매량이 늘면 한국 공장 가동률은 유지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생산 거점보다 수익 귀속처가 바뀐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생산한 차량이 현지에서 팔리면 이익도 미국 법인에 쌓인다. 국내 생산은 유지돼도 미래 기대 수익은 줄어든다. 국내 부품사·물류사와 연계된 가치사슬 약화도 봐야 한다. 현대차 강판을 제작하는 현대제철도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를 짓는다. 부품을 생산하는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 물류와 재고를 관리하는 현대글로비스도 미국 현지 공략을 키운다.
세간은 미국발 ‘관세전쟁’을 피하기 위한 대응으로 설명한다. 전 국민이 노심초사 트럼프의 특혜를 기대하고 좌절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대통령 부재를 상쇄하는 ‘민간 외교관’이라며 찬양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민국 기업이 미국에서 돈 벌면 좋은 일 아닌가?”“우리 시대의 절대 공식은 ‘글로벌기업 성장=한국 경제 성장’ 아니었던가?” 안타깝지만 그런 시대는 지난 듯하다. 미국에 쌓인 이익에 세금 매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미국 관세만큼 심각한 해결 과제가 있다. 2022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법인세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시행한 ‘해외자회사 익금불산입제’다. 한국기업이 지분 10% 이상 보유한 해외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의 95%를 비과세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부담 완화를 통해 재벌 특혜 패키지를 완성했다. 대기업이 해외 자회사에 일감 몰아주고 그 수익을 국내에 배당 송금하면 세금을 대부분 걷을 수 없게 됐다. 재벌들의 숙원사업인 내부거래 완화와 절세를 동시에 해결해 준 셈이다.
현대차그룹을 예시로 들어보자. 현대차의 미국법인 HMA는 HMGMA와 HMMA 지분을 각각 60%, 100% 소유하고 있다. 현대차 국내 법인이 HMA 지분 100%를 들고 미국 법인을 지배하는 구조다. 현대차가 대주주로 있는 기아도 살펴보자. 기아의 미국 조지아주 법인인 KaGA 지분은 미국 법인 KUS가 100% 소유하고, 기아 국내 법인이 KUS 지분 100%를 들고, 다시 현대차가 기아 지분 34.16%를 소유한 구조다. 즉 미국 내 판매 수익은 모두 미국 법인으로 귀속되고 국내 배당시 95%에는 세금을 부과할 수 없는 구조다.
실제 개정 법인세법 시행령 적용 뒤 현대차와 기아차의 2023년 배당수익은 전년 대비 가각 2.3배, 29.8배 늘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7.4배), LG전자(2.4배) SK하이닉스(0.6배) 등 대부분 대기업들은 배당을 통한 조세회피 전략을 취했다. 당시 경실련 재정제세위원회가 배당수익금 기준 법인세 감면액을 추산해 본 결과 10조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는 이 제도를 ‘투자 유인책’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들이 해외에 쌓인 현금을 국내로 유입한 뒤 재투자를 할 것이란 얘기다. 일자리는 늘고 법인세수도 개선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꿈꿨다. 현실은 세간의 우려보다 훨씬 참혹했다. 기업들은 수십 조원을 미국에 쏟아부었고 부과할 수 없는 세수만 늘었다. 산업 공동화로 일자리 감소 우려는 커졌다. ‘글로벌기업의 성장 = 한국 경제의 성장’이란 공식이 들어맞지 않게 된 셈이다.
국내 산업을 파괴하고 세수 기반을 흔드는 제도는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내 투자 조건을 비과세 조건으로 두던지, 제도를 폐지하고 다른 방식의 유보금 유입 방식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