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해 파면했다. 같은 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선거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고, 이에 발맞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 예비후보자 공모에 들어갔다. 이제 대선 정국이다.
조기대선을 바라보는 관점
지난 100여일 동안, 대한민국은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찬반 양측 지지자의 시위가 이어졌고, 급기야 탄핵 반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을 침탈하는 폭동까지 발생했다. 대략 60% 대 35% 정도의 비율로 탄핵 찬반 양측 여론이 나뉜 가운데, 탄핵에 반대해 기각해야 한다는 응답도 적지 않으니, 헌법재판관 중 6명 이상의 탄핵 인용 의견을 확보하지 못해 기각될 거라는 예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된 인용 결정이었다.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것 같다. 윤 전 대통령측의 주장 중 기각의 사유로 받아들여진 게 없다는 거다.
특히 헌재 결정문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본다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 잘못을 지적한 내용이다. 즉, 윤 전 대통령의 “위헌, 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헌재는 첫째 우리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라는 점, 그리고 둘째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잘못은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라는 점이다.
조기대선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제 명확해졌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에게 신임받을 수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심이 흉흉하다
그렇다면, 최근까지의 탄핵 정국을 지나면서 민심은 어떻게 변하고 있었을까. 필자는 이 점이 사실상 대선을 준비하는 여러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뿐 아니라, 이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재건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분들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헌법기관을 포함한 여러 정부기관의 위상이 매우 큰 폭으로 실추됐다고 본다. 서울서부지법 침탈 사태는 사실 충격적이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사법부가 폭도들에 의해 공격당하는 사태는 유례가 없었다. 게다가 헌법기관이라고 하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동원했고 그 이유가 선거조작이라는 식의 주장이 만연했다. 황당하게도 이게 바로 계엄의 이유라고도 했다. 비상계엄 과정에서 군의 위상도 땅바닥에 떨어졌다.
둘째, 민주공화국의 기본적인 운영 방식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확산했다. 공화국이지만 민주주의에 따라 운영되는 우리나라의 정치체제에서, 행정부 수장이 거부권을 반복적으로 행사하면 민의를 받들어 법안을 마련해야 하는 국회는 완전히 무력화되고, 야당은 탄핵이라는 강경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헌재는 윤 전 대통령 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각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보면서 다수 국민이 이 나라 정치체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견제와 균형이라는 작동 원리는 형해화된 지 오래고, 삼권분립의 존재 이유도 모호해졌다.
셋째, 각종 경제지표는 지금이 코로나19 팬데믹과도 같은 긴급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으나, 정치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심리지수 순환변동치는 현재 우리 경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는 경제와 민생을 위해 여야가 손잡는 모습보다는 탄핵을 두고 서로 날선 고발전을 계속해 왔다.
네거티브 캠페인 영향 약화될 것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대선은 어떻게 전개될까. 일단, 조기대선은 60일 내에 마무리돼야 하기에 지금 정치권을 뒤흔들 수 있는 변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필자에게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당선 가능성'을 묻는 독자도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대통령선거일로부터 2년 내에는 언론에서 언급되는 인물이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본다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서 대권을 거머쥘 가능성 거의 없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사례는 국민 전체적으로 학습효과를 남겼을 것 같다. 정치인이 아닌 공직자, 즉 검사 출신이 정치를 맡아서는 국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겼을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가 있다. 이 때문에 2개월 내에 정치권에서 중량감과 인지도를 모두 갖춘 인물을 발굴해서 당선을 일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결국 지금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지지도나 적합도를 얻고 있는 인물을 주목해야 할 것 같은데, 대략 야권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여권에서는 김문수·오세훈·한동훈·홍준표 등의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제3정당에서 이준석 같은 인물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겠다.
그런데 보통 유권자의 40%는 정당 정향 투표 성향을 갖고 있고, 또 다른 40%는 인물론과 대세론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나머지 20%는 균형심리에도 영향을 받고, 역시 인물 선호도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겠다. 정당 정향 투표 성향자가 조기결정자로서 선거일 1개월 이전에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는 반면, 선거일로부터 1주일 전부터 선거일 당일에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는 임박결정자 중에는 대세론에 의한 영향을 받는 유권자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인물론은 어떤가. 인물은 네거티브에 의한 영향과 추진력·리더십 같은 인물 중량감에 의한 영향이 있을 수가 있겠다. 팬덤 현상과 극단적인 마타도어가 혼재돼 있는 영역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이번 대선이 인물론 중 네거티브에 의한 영향 상당히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싶다. 지난 대선처럼 네거티브 캠페인에 의한 차악 선택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기 어렵다는 거다.
그 이유는 네거티브 캠페인의 기본적인 논리가 상대 후보는 도덕적이지 않다는 건데, 인물 도덕성을 중시하기보다는 앞서 봤듯, 민주공화국의 기본적인 운영 원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민주공화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제 누구의 힘이라도 합쳐야 할 때다.
이번 대선 ‘효능감 대전’ 되나
그렇다면 정치인을 평가하는 매력과 능력, 일체감과 효능감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게 될 것인가는 쉽게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매력보다는 능력, 일체감보다는 효능감이 선택 기준이 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런데 사실 효능감이라고 해서 대한민국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느냐는 대단한 성과 기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 해야 할 가장 기본에 집중하는 흐름이 형성될 수도 있다. 시장에서 제품 구매 과정으로 볼 때, 지출 규모가 큰 제품처럼 기능적 충족감보다는 성능의 비교 우위를 따지는 고관여 제품이 아니고, 화장지같이 성능보다는 기본 기능에 충실하면 브랜드를 따지지 않고 선택하는 저관여 제품 구매 행동과 같은 과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즉, 이번 조기대선은 네거티브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도덕성 논란은 큰 영향이 없는 가운데, 효능감 중에서도 정치의 기본 기능에 충실한 인물을 선택하는 과정이 될 가능성이 있다.
메타보이스㈜ 부대표 (bongshinkim@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