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남태령에 농민들이 온다는 소식 듣고 달려온 여성들이 트랙터 업고 온 트럭 기사에게 간식을 건넸다. 트럭에 챙겨 둔 홍삼액 세 포가 돌아왔다. 그도 부족했는지, 삶은 달걀 두 알이 더 나왔다. 장거리 운전 대비해 끼니로 챙겨 둔 것이었다.

모든 준비를 척척 해서 나온 젊은이들이 돗자리 깔고 책을 읽다 말고 외쳤다. 노트북 펴놓고 과제 하던 틈틈이 주먹을 뻗었다. 반쯤 열린 가방엔 먹거리가 가득했다. 핫팩과 구깃구깃한 은박 담요도 보였다. 지난 겨울 호되게 시린 밤을 함께 지켰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내란 수괴의 조속한 파면을 촉구했다.

인근 남태령역 2번 출구를 나오던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노인들이 저기는 먹을 걸 막 뿌린다고 말했다. 이재명이가 해 먹은 돈이 많아서 막 뿌리는 거라고 앞서 가던 남자가 말했다. 쌍욕이 뒤따랐다.

트랙터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던 확성기 매단 승합차에선 시작부터 끝까지 욕설뿐인 선동이 쏟아졌다. 민주 회복을 외치는 틈틈이 간식을 먹던 사람들이 귀로는 욕을 먹었다. 젊은이들은 예의 그 생글생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응원봉이 낮부터 빛났다. 나이 든 사람들은 요즘 구호를 익히느라 애썼다. 힘겨워하다가 빵 터져 웃는 일이 잦았다.

헌재발 새 소식 찾느라 스마트폰만 보며 걷다가 덜컹 돌부리에 걸려 휘청거린다. 고개 들어 둘러보니 여기저기 개나리, 산수유, 목련이 막 피었다. 때가 됐다. 그늘진 곳은 조금 늦는다지만 결국에 다 피어날 것을 모두가 안다. 꽃샘추위가 어김없다. 그늘진 곳 찬 바닥에서 사람들은 오래도 버틴다. 그들이 시린 시절을 견디는 건 새콤달콤이며 자유시간, 손수 만들어 나눈 브라우니 케이크 같은 간식에 담긴 열량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태령에서, 또 광화문에서 사람들은 먹거리를 나눈다. 온기를 나눈다. 짐을 나눠 지고, 불안을 나눈다. 모여 선 자리에서 사람들이 자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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