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법 앞의 평등”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헌법 제11조에 적힌 말이다. 누구든지 행정부나 사법부에 의해 법을 적용받음에 있어 평등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작금의 하 수상한 시절을 지내다 보니, 그 평등이라는 말이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의 유명한 문구와 겹쳐서 보인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먼저 평등한 보통 사람의 현실을 보자. A는 30대 건설노동자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땀 흘려 일해 가족의 생계를 일군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다. 동시에 그는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으로 채용을 거부당하는 노동조합원이기도 하다. 그는 2024년 11월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이는 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가 신고된 행진을 가로막은 경찰과의 충돌에 휩쓸려 연행됐다.

경찰은 신속하게 수사한다. 당일 그의 행동을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검찰은 과도하리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그의 구속영장실질심사에는 검사 2명이 출석해 1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PPT)까지 동원한 치열한 변론을 펼쳤다. 검사의 변론 속에서, 집회 기획에는 관여한 적도 없는 평조합원이며 동종 전과도 전혀 없었던 그는 매년 같은 범죄를 반복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조직적·계획적 범죄자로 이름 붙여진다. 결과적으로 A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이는 그를 구속시킬 최후의 이유까지 철저히 검토한 결과였다. 우리 법체계는 이처럼 ‘평등하게’ 한 노동자를 대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보다 더 평등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A보다 약간은 더 평등한 조치가 허락된다. B는 대한민국 대통령이고 C는 대통령의 경호를 담당하는 경호차장이다. B는 헌법에 위반하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마비시키고자 했다. B는 이처럼 내란죄의 범죄행위를 범하고도 자신이 부리는 C를 동원해 법원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도록 지시했으며, C는 기꺼이 그 명령에 따라 영장을 무력화했다.

경찰은 소극적으로 편을 든다. B를 구출한다며 법원을 습격하고 내전을 선동하는 자들은 자유의 영역에 내버려두는 대신, 대규모 시위 진압을 위한 훈련을 한다며 가상의 적에게 ‘민주노총’ 조끼를 입힌다. 법원은 극히 이례적으로 온정을 베푼다. 법률의 문언과 교과서의 설명에 상반되지만 오직 B만의 이익을 위해 구속기간 계산법을 바꾼다. C가 경호처 내부를 단속하며 증거인멸을 하고 있지만 그런 C에게조차 불구속 수사 원칙을 관철시킨다.

검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더 적극적으로 면죄부를 준다. 수사관행과 다르다면서도 B의 즉시항고를 포기한다. C에 대한 구속영장을 3번 반려한 뒤 4번째 영장의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검찰은 B도 C도 아무런 저항 없이 풀려나도록 만든다. 우리 법체계는 이처럼 더욱더 ‘평등하게’ 어떤 권력자들을 대한다.

A의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정의를 말하던 검사의 눈빛을 기억한다. 1시간여의 변론 동안 형형하게 빛났던 그 확신에 찬 눈빛 속에서 A는 이미 공공의 적이었다. 검사의 직무란 이렇게 평등하게 모든 인간으로부터 죄인을 발견해 내는 일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B의 석방을 논의했던 대검찰청의 회의 자리에서도, 검사는 출석하지도 않았던 C의 구속영장실질심사 심문기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곳에는 오직 권력자의 안위를 위해 온몸을 비틀어가며 말장난을 하는 기술자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덜 평등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입장에서, 우리 법체계를 떠받치는 높으신 분들에게 간곡히 요청드린다. 법정이 기울어져 믿기가 어렵다는 말이 그저 뒷골목의 한탄으로 남을 수 있게, 최소한 형평성의 외관이라도 지켜달라. 우리 법이 노동자와 약자에게는 가혹하고 권력자와 기업가에게는 유순하다는 게 달리 새로운 발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민중을 우롱하지는 말아달라. 노동자와 약자의 편에 서달라는 말까지는 안 할 테니, 그저 내란범과 부역자들의 편에 서 있지는 말아달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A도, 그 어떤 평범한 사람도 당신의 권위를 믿지 않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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