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상흠 공인노무사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2017년 11월29일 뉴스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2017년 11월16일 오후 6시 10분 안산의 특성화고 3학년 박아무개 학생이 반월공단의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가 스스로 몸을 던졌고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불과 며칠 전 제주도 음료공장에서 현장실습생이 혼자 일하다가 기계에 몸이 끼여 숨진 사건이 있던 터라 더 깜짝 놀랐다. 놀란 마음에 무턱대고 아주대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어머니를 만났고, 이후 학교 선생님을 만나고, 회사 대표를 만났지만 정작 박씨는 중환자실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박씨는 2017년 11월7일부터 3개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반월공단의 상시 17명 규모의 플라스틱 제조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박씨는 일 하면서 배운 내용을 공책에 꼼꼼히 적었다. 박씨의 공책에는 “부은 후에 용량은 반드시 메모! 월급 날아간다”라고 적혀 있었다.

11월13일 박씨는 자신이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원료배합을 하다가 1천만원 손실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원료배합을 잘못하면 월급이 날아간다고 배운 박씨는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11월16일 재해 당일에는 배합통 청소를 하면서 20대 후반의 선임에게 욕설을 들었고, 퇴근 시간이 지나고 선임은 건물 밖으로 불러 욕을 했다. 박씨가 선임에게 욕을 먹은 직후 담임선생님에게 전화해서 했던 첫 마디는 “문신한 형이 ‘씹팔 새끼야, 개새끼야’라고 욕했어요”라는 말이었다. 박씨는 “그냥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담임선생님은 “너만 힘든 게 아니다. 다른 애들도 힘들고 거기서 나오면 갈 데가 없다”고 하면서 버티라고 했다.

박씨는 학교에 돌아갈 수 없었고, 버틸 수도 없었다. 박씨는 공장 옥상으로 올라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박씨는 부상과 뇌 손상 때문에 의사표시를 할 수 없었고, 어느 정도 회복돼 1년3개월이 지나서 2019년 2월22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그때만 해도 18살, 고3 현장실습생이 욕설과 괴롭힘, 업무부담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당연히 산업재해로 승인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2020년 1월10일 근로복지공단은 ‘통상적인 수준의 스트레스 노출로 판단돼 자살 시도를 유발할 정도의 큰 정신적 충격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면서 불승인했다. 산재 재심사를 신청했지만 재심사에서도 기각 결정이 났다. 업무상 스트레스가 악화돼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에 이르게 된 점은 인정되나 신청병명이 틀려서 기각한다는 것이다. 2020년 10월19일 다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다시 불승인했고, 산재재심사도 또다시 기각됐다.

우리 센터 운영위원인 유승희 변호사(법무법인 원곡)에게 요양불승인 취소소송을 부탁했다. 너무 안타까운 사건이고 당연히 산재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유 변호사도 동의하고 흔쾌히 맡아줬다.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취약요인이 없는 사회평균인’을 기준으로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해서는 안 되고, 18세 기준으로 판단해야 된다고 해 산재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한 현장실습생의 극단적인 선택이 산재로 승인받는데 7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18살 학생은 26살 청년이 됐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는 자유롭게 복교를 한다고 하고, 현장실습 전담 노무사 제도도 생겼다. 안산에서는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일하는 청년노동자가 모여 ‘마니또’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항소심에서 승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인정돼야 하는 사건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공인노무사 문상흠(moondora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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