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영 변호사(심산법률사무소 대표)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는 도시에 편입된 하층민 여성을 통해 근대화의 그림자와 당대의 사회상을 명징하게 드러낸 명작이다. 당차고 씩씩한 영자는 시골에서 상경해 식모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아들에게 겁탈을 당해 쫓겨나고 봉제공장 여공, 술집 종업원을 전전하다 버스 안내양을 하게 되는데 불의의 사고로 팔이 절단된다. 팔 한쪽이 없어진 영자는 꿈도 희망도 없이 성까지 팔게 된다

최근에 국선변호를 하게 된 사건들이 있다. 농촌에서 나고자란 20대 청년 A씨는 부모님의 농사일을 이어 받기 싫어서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 일자리를 구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때 우연히 만난 사업가가 중국에서 크게 운영하는 게임장의 관리자가 필요하다고 청년들에게 해외취업을 제안했다.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사일, 평생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헬조선을 떠날 수 있는 기회다 싶어 즉시 지원했지만, 그 기대는 비행기에서 내린 후 반나절도 되지 않아 뭉개졌다.

욕설과 함께 정신없이 두들겨 맞은 뒤 여권을 빼앗긴 채 책상과 전화기 한 대뿐인 고시원 크기 단칸방에 감금된 그에게 던져진 것은 전화번호부 목록. 그는 그날부터 보이스피싱 콜센터(유인책)가 됐다. 기회를 봐 탈출을 마음먹었지만 불가능했다. 조직 관리자는 그에게 수익금을 나눠주겠다고 회유하면서 그가 보이스피싱을 하는 모습을 이미 영상으로 찍어 뒀고, 탈출 즉시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조직원들은 서로 누군지 알 수 없게 각자 배달된 음식으로 방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

20대 청년 B씨는 지적장애 3급 장애인이다. 그의 가족들도 모두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장애인 어머니를 대신해서 장애인 동생들에게 학비와 용돈을 주고 싶었던 그는 외국기업의 부동산 거래자금을 심부름한다는 알바에 지원했다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됐다.

시골청년과 장애인청년이 보이스피싱 유인책과 수거책이 된 모습은 마치 60·70년대 서울에 취업하러 온 시골소녀들이 이곳저곳에서 착취당해 꿈을 접고 유흥업소로 흘러 들어간 모습과 닮았다. 영자의 삶은 현재에도 반복된다.

보이스피싱도 진화하고 있다. 범죄 초기에는 한국계 중국인들이 직접 유인책을 했으나 어색한 발음으로 성공률이 낮아지자 자신들이 중간관리자가 돼 한국인 중에서도 빈곤청년들을 보이스피싱에 유입시켜 활동하고 있다. A씨는 체포됐을 때 가진 돈이라곤 100만원 남짓이 전부였다. B씨는 건당 50만원을 약속받고 수천만 원을 전달하다가 두 번째 범행 만에 검거됐다. 그들이 얼굴도 본 적 없는 총책은 범죄 수입의 95% 이상을 가져간 채 자취를 감췄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관리자급의 검거율은 2% 미만(경찰청 범죄통계)이다.

안타깝게도 이 청년들로부터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사람들 또한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통념과 달리 보이스피싱 피해자 비율은 노년층보다 청년층에서 더 높다. 게다가 보이스피싱 범죄자 중 20대 비중이 42%다(경찰청 범죄통계). 청년 보이스피싱 범죄는 서울과 지방의 심화된 양극화, 농촌 붕괴, 장애청년의 고립과 빈곤, 불평등의 고착화 등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청년들의 범행은 용서받기 어렵다. 그러나 삶의 고단함에 지친 청년이 범죄를 선택지로 고를 수 있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2000년대 이후 정치인 개인에 대한 극단적 혐오세력 또는 극단적 팬덤세력이 적대적 공존관계를 이뤄 다른 주요한 의제들을 삼켜 왔다. 사회 시스템 구성에 대한 고민은 실종됐고 사회 전 분야의 양극화가 차곡차곡 진행됐다. 젊은이가 제 인생을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일은 주식투자 리딩방에 가입하는 일보다 하찮아졌고 선한 영향력을 외치는 자칭 멘토가 넘쳐나지만 연대의식은 소멸됐다. 그 결과 좌절이 극복되기 어려운 사회, 한 번 뒤쳐진 인생은 평생을 노력해도 만회가 불가능한 사회가 구축됐다.

그 시절 영자가 장애를 가진 성매매 여성이 됐는데도 직접 나무를 깎아 의수까지 만들어 주며 끝까지 그녀를 사랑한 창수가 있었기에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가족이 해체되고 결혼·출산·양육은 기피되고 자살은 늘어나며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가 된 오늘날, 범죄의 문턱을 넘거나 넘기 직전인 청년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는 영자가 살았던 반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부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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