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반도체특별법안의 근로시간 한도의 예외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의식한 듯, 주 4일제를 언급하면서 “AI와 첨단기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것”이며, “특별한 필요 때문에 불가피하게 특정영역의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더라도 총노동시간 연장이나 노동대가의 회피수단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반도체특별법안의 근로시간 한도 예외를 여전히 고집했다.

주 4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2020년 12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우리 사회는 이미 위험수위의 근로시간 유연화에 노출돼 있다. 6개월에 걸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면서 특정주 64시간까지 사용이 가능하게 됐다. 연구개발직 업무량에 따라 시업과 종업시간을 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3개월 정산기간 동안 총근로시간만 지키면 특정주 근로시간 한도가 없어 몰아치기 과로노동이 허용된다. 또한 사용자의 필요로 특별연장근로를 노동부가 인가해 주면 개별 동의만으로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이재명 대표는 “한국의 노동시간제가 주 52시간, 연간 2천800시간이고, 연 3천시간을 넘기겠다는 의미는 아니” 라고,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고 유연화하되 심야노동이나 주말노동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얘기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유연화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AI에게 맡기는 것 말고는 장시간노동 단축방안은 없고, 연장근로 대가만 주면 노동유연화는 문제없는 것일까. 연구개발직은 기본 3개월까지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고 사용자의 필요만 인정되면 인가기간이 계속 연장될 수 있다. 결국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과 특별연장근로 인가가 결합되면 연중 불규칙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다. 진짜 문제는 대가를 받는다고 목숨을 담보로 한 몰빵 노동을 일상적으로 허용해도 무방하다는 위험한 발상에 있다. 총근로시간을 지키면 된다는 이재명 대표 말은 2년 전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가 아닌 연단위로 변경하려 한 윤석열 정부의 꼼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특별법안에서 반도체산업의 적용범위를 유관산업 전반에 걸쳐 그 시설에 대한 건설업까지 광범위하게 포괄하게 되면, 근로시간 예외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연구개발직 노동자도 매우 방대하다는 문제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미 십여년전부터 국가경쟁력 강화,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특정사업과 업종에 지원과 특혜를 보장하는 산업특례법령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번 반도체특별법안의 근로시간 특례처럼 직접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은 전례는 없다. 반도체특별법은 특별법의 이름으로 노동권을 침해하는 입법의 빗장을 푸는 도미노가 될 것이라는 지적은 단지 기우가 아니다. 앞다투어 근로시간 규제를 풀어달라는 건설업·조선업의 요구와, 반도체산업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산업 전반에 대한 근로시간 한도 예외를 검토하자는 미래에셋 사장 출신 홍성국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에서 보듯이, 근로기준법의 원칙을 흔드는 위험의 신호탄은 이미 쏘아올려졌다.

그간 산업특례법령들은 사실상 소수의 재벌대기업에 대한 특혜와 지원이 중심이 돼 온 반면 특혜로 얻는 이익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하게 할지, 특혜받은 기업들이 어떻게 공공적 책무를 다하게 할지는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그러나 산업특례법령들의 1조 법의 목적에는 항상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지역경제의 균형성장이 명시돼 있다. 즉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에 배치돼서는 안된다. 산업특례법들의 궁극적 목적인 국민경제의 건전한 균형발전은 산업발전과 성장의 일원인 노동자 주체의 존중과 노동권 보장이 조화되는 방식이어야 하고,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위헌적 입법이 될 수 있다.

노동유연화 확대는 안정적 고용이 아니라 불안정 노동체계의 확산을 의미해 왔다. IMF구제금융 이후 우리는 경제위기라는 말을 더 자주, 더 빈번하게 접하고 있다. 경제위기라는 유행가의 후렴구가 돌기 시작하면, 서민과 민생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늘상 소수 재벌대기업에 대한 특혜와 공적자금 퍼주기로 둔갑됐고, 그때마다 풍전등화의 노동자 서민들은 고용-임금-노동시간에서 한 발짝 더 깊은 불안정노동의 늪으로 빨려 들어갔던 일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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