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님 기자

주 4일제, 국민소환제, 정년연장, 보편적 기본사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선공약에 견줄 만한 주제들을 꺼내놓았다. 조기대선 주자로서의 청사진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이 중 주 4일제 언급이 관심을 모았다. 이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주 4일제를 말하면서도 특정 산업의 노동시간 유연화는 가능하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허물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첨단기술 분야에서 장시간 노동과 노동착취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라고 밝힌 만큼, 당내 우려와 노동계 반발을 의식해 수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노동’ 31번 언급, “주 4일제로 나아가야”
필요하면 특정 영역 노동시간 유연화 가능

이 대표는 “창의와 자율의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며 “AI와 첨단기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하고, 첨단과학기술 시대에 장시간 억지노동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윤석열 정부의 ‘주 69시간 근무제’에 “장시간 노동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라고 밝혔던 이 대표의 입장과 다를 바 없어 반노동 논란을 일축한 것처럼 읽히지만, 이번 연설에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이 대표는 “특별한 필요 때문에 특정 영역의 노동시간을 유연화해도, 그것이 총 노동시간 연장이나 노동 대가 회피 수단이 되면 안 된다”며 추가 노동시간 유연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민주당이 지난 3일 진행한 정책 디베이트(찬반토론) 이후에도 이 대표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정책 디베이트에서도 “총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고, 본인이 동의하는 조건에서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정도의 유연성을 부여하자는 것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몰아서 일할 때’ 건강권 대책 언급 안 해
한국노총 “윤 정부 120시간 노동과 다를 게 뭔가”

이 대표가 노동시간 유연화 대책을 경제적 포상으로 강조한 점도 우려스럽다는 시선이 있다. 이 대표는 “그래서 (주 52시간 상한제 예외에 대한) 진심이 뭐냐”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가 나오자 “심야노동, 주말노동, 연장노동해서 노동강도가 올라가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기업이) 지불한다고 하지 않냐”며 “설마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겠다는 첨단 산업 기업들이 노동착취하고 노동시간 늘려서 경쟁하겠다는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 미리 배포된 연설문에 없던 돌발 발언으로, 이 대표는 노동자들이 몰아서 일하게 될 때 건강권 대책보다 경제적 포상을 먼저 떠올린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 대표가 여러 번 언급한 ‘사회적 대타협’이다. 첨예한 주제는 유보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 대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대화와 신뢰 축적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늘리고, 국가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노동 유연성을 확대해서 안정적 고용을 확대하는 선순환의 사회적 대타협을 반드시 이뤄 내야 한다”고 했다.

노동계는 이 대표에 노선을 확실하게 정하라는 목소리를 냈다. 한국노총은 이날 입장을 내고 “(연설은) 최근 불거진 반도체 분야 주 52시간 상한제 예외 추진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며 “이 대표의 노동유연화가 필요에 따라 120시간 노동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유연화와 다를 게 무엇인가, 반도체 분야 주 52시간 상한제 예외 입장 철회를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갑자기 주 4일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가 표를 얻기 위한 양동작전이 아니길 바란다”고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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