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 실리콘 밸리의 빅테크 경영자들이 1월20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핵심 인사로 참여한다는 소식이다. 트럼프 재선의 일등 공신인 일론 머스크는 앞으로 정부에서도 중요한 영향력 행사가 거의 확실하다. 제프 베이조스는 자신이 소유한 워싱턴포스트(WP)의 민주당 공개 지지를 막으면서 트럼프 지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팩트체크’ 기능을 종료하는 방식으로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행동을 보여줬다. 앞으로 실리콘 밸리가 친환경 개혁의 이미지를 포기하고 우익 포퓰리스트 트럼프의 장단에 맞춰 얼마나 반환경 반개혁에 동참할지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지난 4년 동안 빅테크 규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대서양 양쪽의 두 핵심 인사인 유럽의 반독점 책임자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와 미국의 연방거래위원장(FTC) 리나 칸(Lina Khan)은 2024년으로 임기를 마쳤고 비교적 온건한 후임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실리콘 밸리의 방향 전환 조짐에 견제 세력마저 사라져 버린 셈이다.

이런 변화를 감지한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고별연설에서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중요한 과거의 용어를 되살려낸다. 일찍이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고별연설을 하면서 꺼냈고 이후 너무 유명해진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위험 경고를 상기시킨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제 군산복합체가 아니라 ‘기술산업복합체(tech-industrial complex)’가 사회의 위험을 초래할 대상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의 뒤를 이어 여전한 초강대국 미국을 이끌 트럼프 정부가, 머스크와 베이조스, 저커버그, 샘 알트먼 같은 한 줌의 디지털 초부유층과 결탁해 통제받지 않는 과두제(oligarchy)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을 사전에 강력히 경고한 것이다.

사실 실리콘 밸리가 개혁 이미지나 녹색 이미지와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는 증거는 최근까지 계속 늘어왔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공지능 경쟁에서 선두를 유지하려 대규모 데이터센터 증설을 서두른 결과 2023년 온실가스 배출이 2020년에 비해 약 30% 증가했고, 이를 추격하려는 구글도 마찬가지로 2023년 배출량이 2019년에 비해 48% 증가했다.

그 결과 빅테크들은 점차 자신들의 탄소중립 약속을 회피하거나 심지어 뒤집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구글 전 최고 경영자인 에릭 슈밋은 공개적으로 “우리는 어차피 기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솔직히 말하며, 자신은 배출량 감축에 집중하기보다는 “인공지능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베팅하고 싶다”고 주장해 충격을 줬다.

또한 한편 치열한 인공지능 경쟁 속에서도 화석연료 의존을 피하려는 편법으로 ‘청정에너지’라는 명분을 걸고 데이터센터에 핵발전을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최근 발견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폐쇄됐던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2호기 원자로 재가동을 요청하고, 구글도 미국 스타트업 카이로스파워와 소형모듈원전(SMR) 전력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아마존과 메타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일찍이 정치 철학자 마이클 월저(Michael Walzer)는 ‘다원적 정의’를 주장하면서 시장경제 영역에서는 ‘자유교환’의 원리를 수용할 수 있지만, 누구도 정치영역에서 투표권을 자유 교환하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대신에 정치의 영역에는 ‘응분의 자격에 따른 공직의 할당’ ‘성과에 따른 보상과 처벌’ 등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 한편 시민사회는 ‘필요’의 원리라는 또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한 영역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다른 영역에 강요할 때 심각한 ‘부정의’가 발생한다. 특히 기술과 경제에서 획득한 경제 권력을 지렛대로 정치권력 장악한 후, 다시 이를 시장 지배력이나 기업의 영향력 확대에 이용하는 사례가 바로 부정의의 대표적 사례다. 바이든이 디지털 초부유층과 결탁해 통제받지 않는 과두제 권력을 경고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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