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도들이 서울서부지법을 점거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하게 말하자면 웃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2021년 미국의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의 아류버전 아닌가.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점거는 비극이지만, 윤석열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점거는 희극이었다. 경찰이 체포를 시작하자 “저, 유튜브 찍고 있어요”라고 다급하게 말하는 극우 유튜버를 보라. 본인을 레거시 미디어 수준의 공인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국가의 공적 권위와 자신의 사적 권위(?)를 혼동하는 그 전도된 정신세계를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 전도된 정신세계를 누가 만들었냐는 거다. 한국뿐만 아니라 작금의 세계 혼란 근원에는 레거시 미디어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기성 제도권 정치가 더 이상 권위를 지니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이 있다. 극우 세력은 유튜브 등의 인터넷 매체를 활용해 대안적 세계를 구성해 놓고 그를 기준으로 기존 제도권 질서를 부정한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사건이나 서부지법 폭동처럼 국가기구 자체를 침탈하는 것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모두 기성 제도권을 부정하고 대안적 세계에 상당한 정도의 신뢰를 보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남 탓할 것 없다. 기성 제도권 정치가 권위와 규범을 창출해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것은 정치인과 지식인들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보수진영의 큰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전직 대통령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보수 지지자들에게 이건 아니라고 말할 권위를 지닌 전직 대통령들부터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과 총리직을 역임한 황교안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서부지법을 습격한 폭도들을 ‘무료’로 변호해 주겠다고 하고 있다. 흥분한 지지자들을 어르고 달래거나 비판하기도 하며 헌정질서를 수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이 폭동을 방조하거나 되려 지원해 주고 있다.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서부지법 습격 사건에는 전문가집단의 정파성과 그를 활용한 보수언론 매체들의 책임이 크다. 보수언론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서부지법 등을 비난하기 위해 연일 법 해석에 있어 소수, 그것도 극소수 의견이라 할 수 있는 희한한 학설들만을 소개하고 있다. 전문가집단이라도 나서서 이를 정리해 줘야 하는데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 자체가 정파에 따라 끝없이 갈라지고, 언론은 이를 이용해 각자의 입맛에 따라 보도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백남기씨가 사망했을 때 백선하 당시 서울의대 교수가 사망진단서에 사망 원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病死)’로 적은 것과 같다.
물론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일찍이 일본의 저명한 법사학자 시가 슈조(滋賀秀三)는 중국 청대 법제사를 개괄하며 청대 재판에는 구속력과 확정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결과에 원고와 피고가 복종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승복하지 않으니 하나의 재판에 대해 끊임없이 상고(上控)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상대에게 살인죄를 덮어씌우려 자기 목숨을 끊는 도뢰(圖賴)까지 성행했다. 하나의 규칙이 공유되는 법질서(legal order)가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에 법적 자율성을 지니고 구성원 간의 분쟁 해결이나 이해조정을 내부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법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건 전제군주가 그러한 자율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근대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법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아시아적 특질의 현대적 재현이다. 구속력과 확정력을 지닌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릴 주체가 사라진 ‘머리 없는 국가’의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먼저 내려진 결정에 ‘복종’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관의 것이든, 전문가집단의 것이든 타인의 결정이 지닌 합리성을 헤아려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신이 속한 대안적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의 결정에 복종할 수 있어야 한다. 전제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저항하는 인민이 아닌 복종하는 인민이 필요하다. 좌파들이 이를 앞서 깨닫기를 바란다.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fpdlakstp@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