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024년 12월19일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 함)에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제외하고,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기준을 재정립했다.
1. 사건의 경위
현대자동차 노사는 2013. 3. 15.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대표소송을 진행했고, 위 소송 1·2심 법원은 모두 ‘이 사건 정기상여금은 기준기간 중 15일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추가적인 조건이 성취돼야 지급되는 것이므로 고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고, 대표소송 원고들은 상고심 진행 중 소를 취하했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원고들은 노사간 합의에 따른 합의금을 수령하지 않은 채 위 사건 소를 제기했고, 1·2심이 대표소송과 동일한 취지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자 원고들이 상고했다.
2. 사건의 쟁점
가. 통상임금의 개념에서 고정성 제외
대상 판결은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제외했다. 그 논거로 ①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의 지급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킨다는 점(법령부합성), ② 당사자가 재직조건 등과 같은 지급조건을 부가하여 쉽게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게 활용함으로써 통상임금의 강행성이 잠탈된다는 점(강행성), ③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개념이므로 실근로와 무관하게 소정근로 그 자체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해야 하므로, 통상임금이 전제하는 근로자는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여야 한다는 점(소정근로 가치 반영성), ④ 통상임금은 법정수당을 위한 도구개념이므로, 연장근로 등을 제공하기 전에 산정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전적 산정 가능성’은 사전에 확정될 수 없는 장래의 요소를 배제하고 ‘소정근로의 온전한 제공’이라는 전제적 개념에 충실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는 점(사전적 산정 가능성), 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억제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정책목표에 부합해야 하는데, 고정성 개념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해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점(정책부합성)을 들고 있다.
나. 통상임금의 개념 재정립
대상판결은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을 말하며,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그에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재직조건부 임금의 경우 근로자가 재직하는 것은 소정근로를 제공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이므로, 재직조건이 부가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의 소정근로의 대가성이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고,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의 경우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충족할 소정근로일수 이내의 근무일수 조건이 부가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상판결은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중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삼은 부분, 재직조건 및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 성과급의 통상임금성을 고정성 인정여부에 따라 판단한 부분, 재직조건부 임금이 조건의 부가로 인해 소정근로대가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부분 및 그와 같은 종전 판결들이 이 판결과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했다.
다. 판례변경의 소급효 제한
대상판결은 ‘임금체계의 근간이 되는 통상임금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으로, 임금지급에 관한 수많은 집단적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를 위해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 사건 및 병행(이 판결 선고 시점에 이 판결이 변경하는 법리가 전제가 되어 통상임금 해당여부가 다퉈져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들)에는 구체적 사건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법의 본질상 새로운 법리가 소급하여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3. 의의 및 비판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 중 하나인 고정성의 위법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다. 근로기준법에는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규정이 없고, 근로기준법시행령 제6조 제1항 또한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임금으로 정하고 있음에도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시행령이 명시하고 있지 않은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요소로 파악하고 있었고, 이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해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것이다(김기덕, ‘통상임금의 법리에 관한 재검토’, ‘통상임금 개념요소로서의 고정성’,「노동과 법」제6호, 금속법률원). 그런데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은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삼은 것에서 더 나아가 재직조건 및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의 통상임금성을 고정성 인정여부에 따라 판단해 고정성을 통과해 통상임금성을 인정받는 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업장에서 사용자로 하여금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따라 재직조건 또는 근무일수 조건을 부가해 그 임금항목을 통상임금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대상판결이 기준임금으로서 요청되는 통상임금의 기능과 본질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충실히 해석해 고정성 개념을 폐기하고 통상임금의 본질인 소정근로 대가성을 중심으로 통상임금의 개념을 재정립한 것은 늦었지만 지극히 정당한 판결이다.
반면에 대상판결은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된다고 하여 소급효를 제한했다. 그러나 종전 판결이 근로기준법령에 근거없는 고정성에 근거해 노동자들의 임금청구권을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었음에도, 대법원이 판례변경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이유로 판례변경의 소급효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번 판결의 소급효 제한은 경총이 작년 10월 대상판결을 앞두고 재직조건부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경우 기업에게 6조 원대의 부담이 증가한다고 주장했던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이 ‘신의칙 법리’를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청구권 행사를 좌절시켰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