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민석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윤석열 정부를 두고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이 정부는 그 첫 시작부터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까지 일관되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일컬었다. 전임 정부 중 어느 정부도 이 정도로 뻔뻔하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기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이제 지록위마의 시대가 끝나지 않겠나 하는 작은 희망을 품었지만 상황이 여의찮다. 지록위마의 시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저렇게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려고 하면 할수록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크게 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들은 앞으로 선거에 나올 때마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아야만 한다.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윤석열과 같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거냐는 질문은 답변과 상관없이 질문 자체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타격이다. 그렇기에 국민의힘은 서둘러 윤석열과의 관련성을 끊어야만 한다. 한동훈이 처음에 걷고자 했던 그 길이 국민의힘이 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한동훈 전 대표는 윤석열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국민의힘에게 살길을 열어주고 그 업적(?)을 인정받아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시원하게 걷어찼다. 되려 윤석열 대통령과 합심해 한덕수와의 과두정 체제를 수립하는데 기여했고, 쓸모없어져 버림까지 받았다. 이런 그가 지금 와서 대선후보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걸 보면 그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지지자들도 상식적이지 않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하고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층의 무려 65%가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를 즐겨 보다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비상계엄을 선포한 상황도 황당하지만 그것도 그렇다고 치자. 대통령 혼자 비상식적이라면 그를 제거하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85명이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행위에 동조하며 그를 지키자고 하고, 전 국민의 30%가 그런 대통령과 정당을 지지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기 시작하면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국가 관료 집단 또한 상식적이지 않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그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국회가 추천한 재판관의 임명을 거부하며 여야 합의를 주문하고 있다. 관료제가 입법부의 통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거부권의 행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 그것이 민주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부가 다수의 총의를 모아 제출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한다는 건 민주주의를 무시 혹은 파괴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헌법을 근거로 들지만 그 헌법이 바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만들어졌다.

더 문제는 이런 비상식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그나마 합리적인 축에 속했던 유승민 전 의원마저 ‘내란죄 철회’가 이재명의 조기 대선을 노린 꼼수라는 막말에 가까운 주장을 펼친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뇌물 혐의, 직권남용 등에 대한 판결이 나오기 전에 탄핵심판이 인용됐다. 윤석열 변호인단도 ‘180일 이내 선고’라는 문구를 ‘최소한’ 180일은 심리해야 한다는 말이라 우긴다. 모든 이들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외치고 있다.

민주주의는 말로 운영되는 체제다. 말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가 없다. 아니, 정치 자체가 지속될 수 없다. 공자가 정치를 하면 무슨 일부터 하겠냐는 자로의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는 일, 정명(正名)을 내세운 건 그런 맥락이다. 윤석열 정부의 집권기는 노사법치주의, 입법독재 등의 괴랄한 조어들이 지배하던 지록위마의 시대였다. 그 지록위마의 끝이 극우 유튜브에 심취해 비상계엄 조치로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재명은 안 돼’라는 말 하나로 이 모든 지록위마를 정당화하려 할 때 자유로워지는 건 국가 하나뿐이다. 이재명이 집권해서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라 말을 바로 세우지 않았기에 나라가 망한다. 말부터 바르게 세워야 한다.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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