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노동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재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바빴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그나마 정치권 내에 노조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숨통 같은 공간을 열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맞으면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왔다고 믿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그것은 바람 잘 날 없이 흔들렸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노동 있는’ 민주주의로 연결되지도 못했다. 그것을 매개하는 노동권력이 없었다. “조직노동자들은 그들의 이익과 열정을 하나의 통일된 정당으로 조직해 대표하지 못했다”(최장집, 2005). 정치적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견인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조건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권력의 매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충분조건은 아니다(고세훈, 2006).

민주주의의 핵심은, 로버트 달(1999)이 지적했듯이 “구속력 있는 집단적 결정은 그 결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내려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 결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는 사람이 그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부과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주주의냐 아니냐의 구분은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차적 조건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를 과정이자 절차로 이해한 것이다. 노동 있는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노동에 의한 민주주의’가 전제될 때 비로소 ‘노동을 위한 민주주의’, 즉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도 가능해진다.

노동은 정치에서 주요한 플레이어가 되지 못한, 주변화된 세력이었다. 배제의 그물망을 뚫으려 노조는 정치세력화를 추진했지만 기업별 체제와 분파주의의 벽에 가로막혔다.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고자 전투적으로 단체교섭에 임했지만 정책이나 입법 의제를 교섭 테이블에 올릴 수는 없었다. 기업 차원에서 진행되는 단체교섭 이슈를 사회경제적 측면으로 확대해 노동정치와 연결할 수 있는 통로는 닫혀 있었다.

정치적으로 배제된 노동이 쟁취한 참여, 사회적 대화

우리나라 경제성장 과정을 특징짓는 것의 하나는 관료자본주의다. 즉 시장과 관료제가 공생하는 체제였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에 경제개발계획이 시행된 이래 정경유착은 구조적이고 역사적이었다. 특히 급속한 경제성장과 산업화 과정에서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 현 한국경제인협회)을 비롯한 경제단체는 권력에 봉사하기 위해 자본을 동원하는 한편 친자본 정책을 끌어내기 위해 권력과 결탁했다. 관료와 자본가는 낙하산 인사와 부패로 결탁한 담합체제의 두 기둥이었다. 가령 박근혜 게이트에서 전경련은 기업에서 대통령으로 돈이 흐르는 통로였으며 그 통로를 통해 기업의 요구도 청와대로 흘러갔다. 경제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민주주의는 사치였고 권력과 자본의 밀월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탄압 대상이었다.

경제단체나 각종 정부위원회와 같은 공식적인 접촉에 더해 사적 네트워크도 동원됐다. 동창회, 향우회, 골프 모임이 일상화되고 권력과 자본은 혼맥으로 엮이기도 했다. 자본은 언론을 소유하거나 광고를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렸고 재벌 연구소와 학계를 동원해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했다. 자본과 권력의 거리는 늘 가까웠고 깊숙한 곳에서 뒤엉켰다. 그렇듯 자본은 권력에 영향을 미치며 노동을 배제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그물망처럼 엮었다. 자본의 노무관리는 국가가 공권력과 법의 이름으로 대신했다.

노조는 투쟁에 나섰다. 기업 차원의 교섭 및 파업에 사회경제적인 투쟁을 결합했다. 그것은 노동기본권을 포함한 친노동적인 사회경제정책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었고 속성상 정치투쟁이었다. 노조의 전투적인 투쟁에 더해 정치의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노조의 조직률이 높아지고 사회적 영향력도 강화됐다. 이제 정부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의사결정, 자본 위주의 정책이 사회갈등을 초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지만 그것이 관철된다는 보장은 없어졌다. 결국 정부는 노조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를 제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노동의 강화된 힘이 자본과 권력의 담합구조에 균열을 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대화는 정부의 시혜적인 조치라기보다는 노조가 투쟁으로 얻은 산물이었다. 사회적 대화는 노동의 증대된 영향력을 정부가 인정한 결과였다. 노동의 힘을 매개로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산하면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노조가 주도해 노동의 이슈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치적 실천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노동정치의 일환을 이룬다.

노사중심성 원칙은 결국 노동중심성 원칙

여기서 지적할 사항은 사회적 대화가 이해당사자로서 노조와 사용자단체를 초대했다지만 정부가 실제로 비중을 두고 초대한 당사자는 노조라는 사실이다. 사용자단체가 정치적 배제를 경험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참여의 제도적인 수단으로 사회적 대화를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사용자단체는 처음부터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회적 대화는 노조와 같은 비중으로 사용자를 초대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노조를 초대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단체를 노조의 상대방(파트너)으로 제도화했을 뿐이다. 사회적 대화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노조의 참여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사용자단체가 불참하면 노정협의의 형태로 사회적 대화가 이어진다. 199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노조와 정부가 연금개혁에 합의한 것이 그런 예다. 아일랜드에서 노사정 3자 협의구조는 붕괴됐지만 공공부문에서의 노정협의는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대화가 자본과 권력의 양자 담합에 대한 노동의 저항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하기 직전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합의한 노사중심성의 원칙은 노동중심성의 원칙을 실질적인 내용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노사중심성의 원칙이 정부 주도가 아닌 이해당사자의 자율적인 운영을 의미한다면 노동중심성은 그런 중에서도 노동이 중심이 된 의제 설정과 협의를 의미한다. 최소한 그것이 노동이 요구하고 투쟁해 얻은 산물이라면 그렇다.

사회적 대화를 노조의 무기로 만들어야

노조는 사회적 대화에서 자신을 주체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노조는 사회적 대화에서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자리매김된다. 참가의 설득 대상이 되는가 하면 참가하더라도 때로는 합의를 강요당하는 들러리에 머물기도 한다. 사회적 대화에서의 정부 주도성을 말한다. 결국 노조는 자신을 사회적 대화의 주체로 설정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대화로부터 타자화된다.

‘갈등의 사회화’라는 말이 있다.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한 샤츠슈나이더 교수가 <절반의 인민주권>이란 책에서 말한 것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갈등에 관여할 수 있게끔 사회갈등을 폭넓게 조직하는 것, 즉 갈등의 범위를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갈등의 사회화는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달해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도록 만듦으로써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을 실현하는 길이 된다. 샤츠 슈나이더 교수가 갈등의 사회화를 사회적 약자의 무기라고 말하는 이유다.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중심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사회적 대화를 사회적 약자의 무기, 즉 노조의 무기로 만든다는 걸 의미한다. 사회적 대화가 노조의 관심 의제를 사회화하고 정치화하는 엔진이라면 그것이 사회적 약자의 무기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노조의 대정부 투쟁에서 전술의 폭을 넓힌다는 것은 덤이다.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tjpark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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