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산별노조 건설이 본격화될 때, 그 모델을 독일에서 찾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 산별노조와 독일 산별노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위노조의 존재 여부다. 한국의 단위노조는 기업으로부터 상근자와 사무실 같은 편의를 제공받음으로써 산별노조의 현장 자원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산별노조의 현장조직은 독일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서구의 산별노조 모두가 단위노조의 역할을 하는 현장조직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은 영어로 유니온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산별노조의 단위노조를 인정하고 있다. 노조를 기업 밖에 두고, 기업 종업원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종업원평의회를 별도로 둔 이원구조를 가진 독일과 달리, 스웨덴은 기업 밖의 노동자와 기업 안의 종업원을 노조가 통일적으로 대변토록 하는 일원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의 산별노조는 기업 밖의 노동자와 기업 안의 종업원을 통일적으로 대변하는 일원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스웨덴과 비슷하다.

서구 산별노조가 중앙이나 지역 차원에서 하나의 협약을 갖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산별노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금속노조(IG Metall)는 1천866개의 단체협약을 갖고 있다. 독일금속노조의 금속전기분과에만 단체협약 376개가 존재한다. 이 중 상당수는 ‘지역’(area) 수준의 협약인데, 이 지역협약은 정확히 말하면 지역 수준에서 체결되는 업종협약이다. 업종협약의 주요 내용은 해당 업종에 적용되는 임금과 시간, 훈련수당으로 사실상 경력, 자격, 숙련에 따른 임금표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

독일화학에너지광산노조(IG BCE)는 2천개가 넘는 단체협약을 갖고 있다. 독일보다 노조 조직률이 훨씬 높은 스웨덴에서도 최대 생산직 노조인 스웨덴제조업노조(IF Metall)의 경우 단체협약이 40개가 넘고, 최대 사무직 노조인 스웨덴사무직노조(UNIONEN)는 단체협약이 100개가 넘는다.

독일금속노조 조합원수는 200만명인데 각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평균 노동자수는 1천명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독일화학에너지광산노조 조합원수는 60만명으로 각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평균 노동자수는 300명 정도다. 스웨덴제조업노조의 조합원수는 30만명으로 각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평균 노동자수는 1만명도 안 된다. 스웨덴사무직노조의 조합원수는 60만명으로 각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평균 노동자수는 6천명 정도다.

독일 산별노조에서는 대각선교섭 형태를 띤 기업별교섭도 발견된다. 폭스바겐에서 이뤄지는 기업별교섭이 대표적이다. 독일금속노조가 폭스바겐의 종업원평의회와 협력해 종업원을 대표하며, 기업의 요구와 노동자의 권익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서구 산별노조의 역사는 다양한 노조들 사이의 통합 역사이다. 예를 들어 1949년 출범한 독일금속노조는 다양한 산업별 노조들과의 통합을 통해 독일 최대의 산업별 노조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1998년 섬유의류노조(GTB)와의 통합, 2000년 목재플라스틱노조(GHK)와의 통합으로 전통적인 금속산업의 영역 밖으로 조직을 확장했다.

산업구조와 조합원 구성의 변동에 따라 조직 구조는 ‘대산별주의’를 지향하는 셈인데, 그것은 백여년에 걸친 통합의 결과이지, 처음부터 그렇게 출발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단체교섭은 사용자라는 상대가 있다. 독일 노조도 자신의 의지만으로 좌우할 수 없는 교섭구조는 무리하게 재편하지 않고 현실적 토대를 인정하는 ‘소산별주의’를 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업 밖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유럽의 노조가 기업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면, 기업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한국의 노조는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그 결과 한국의 노조는 기업별노조를 단위노조로 유지면서 산별노조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이렇게 한국 산별노조에 새겨진 기업별노조의 DNA는 한국적 조건과 상황의 영향을 받으면서 진화하는 중이다. DNA는 제거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과 환경의 영향에 따라 진화할 따름이다. 한국 산별노조에 깊이 뿌리박힌 ‘기업별노조의 DNA’도 그렇다.

윤효원 객원기자/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we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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