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동’이라고 했던가. 19일, 대법원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됐다. 그의 말이 과해서 낯이 뜨거울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의뢰인이 크게 만족한다는 말이니 변호사로서 나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대법원 대법정에서 판결 선고를 방청하고 나온 직후였다. 그러니, 대법원 판결에 이미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음에도 그 말에 더욱 더 그러했다. 사실 나는 몇달전에 원고들 소송대리인로 선임됐다. 1심부터 대리해온 김상0, 김차0 변호사에 비해 내가 크게 수고했다고 볼 수 없다. 패소한 상태에서 대법원에 상고한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부에 회부돼 심리를 진행하게 되면서 그가 찾아와 나를 추가로 선임했던 것인데, 이미 상고이유서까지 제출한 상태였다. 그러니 내가 한 것은 상고보충이유서 제출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는 그걸 읽고서 크게 만족했나 보다.
나는 대법원 대법정의 맨 앞자리에서 재판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의 판결 선고를 들었다. 대법원장, 대법관 등 13명의 전원일치로 2013년 갑을오토텍사건에서 선고한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한다는 부분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판결에 크게 만족해서 감동은 아니라도 감격스럽다고 해야 마땅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기분은 좋았지만, 수많은 일들이 떠오르면서 온갖 감정이 스쳐갔다.
2. 이날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관해 두 개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재직자조건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일정근무일수조건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각각 쟁점으로 한 사건이었다. 구체적으로 한화생명보험사건은 지급일 현재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재직자조건’이, 현대자동차사건은 15일 미만 근무시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일정근무일수조건’이 문제됐다. 모두 통상임금의 개념징표인 고정성을 결여했다며 사측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서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연차휴가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과 그에 따른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그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해서 다퉈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날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이런 조건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2013년 12월18일 선고한 갑을오토텍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통상임금에 관해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고 판시해 정기성, 일률성 외 고정성을 개념징표라고 파악했다(2012다89399, 2012다94643 판결). 이와 같이 정기성, 일률성 외에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징표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직자조건 및 일정근무일수조건의 임금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고정성이 통상임금의 개념징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위와 같은 통상임금에 관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를 전원합의체재판부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변경했다. 이렇게 고정성을 제외하게 되면, 통상임금이란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화생명보험의 재직자조건 상여금과 현대자동차의 일정근무일수조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은 판결을 선고했던 것인데, 이제 더는 한화생명보험과 같은 재직자조건의 상여금과 현대자동차와 같은 일정근무일수조건의 상여금은 고정성 결여 운운하며 통상임금에서 제외시켜서는 안 되게 됐다.
3. 솔직해야겠다. 감동이다. 나는 2006년경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 요소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노동제, 법정근로시간제가 작동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세계 최장 수준의 장시간 근로를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초과근로를 규제하고자 마련된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제도가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은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50% 가산해서 지급토록 해서 사용자의 부담을 통한 연장근로 등 노동자를 초과근로로 사용하는 걸 규제하고 있다(제56조). 1일 8시간, 1주 40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제50조가 노동제, 법정근로시간으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법정수당제도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정근로(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는 임금이 온전히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나는 보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통상임금에 관한 여정이 시작됐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소송해 왔다. 수없이 주장하고 주장해 왔다. 처음에는 상여금 자체가 매월 지급하는 임금이 아니라며 정기성 등을 결여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부터 부숴야 했다. 돌이켜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지만, 그때 사측의 대리인은 심각했다. 상여금이 매월 지급되는 기본급, 각종수당 등의 임금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반복해서 주장했었다. 그리고, 당시 대법원 판례의 통상임금의 의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고정성을 제외하고 통상임금을 파악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나는, 2013년 갑을오토텍사건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원고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으로 제출한 서면과 대법정에서 진행했던 공개변론에서 했다. 그 대법 원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됐던 2013년 12월 18일은 내 통상임금 여정의 중간 마침표였다.
상여금도 다른 임금항목과 마찬가지로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면서 통상임금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에 있어서 분명히 한걸음 나아간 것이었다. 많은 사업장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돼 노동자들은 각종 법정수당 등 추가 임금을 지급받게 됐다. 그리고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법정수당 등 임금의 추가 부담으로 가산 임금을 통해서 초과근로를 규제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제도가 본래 기능을 하게 되면서, 주야맞교대 등 근무형태가 급격히 변경돼 실제 근로시간 단축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징표로 내세웠다. 법정근로(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는 임금이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거듭해서 주장했지만,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지급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여 정기성, 일률성 외에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징표로 파악했다. 이에 따라 재직자조건, 일정근무일수조건의 임금이 고정성이 결여됐다며 통상임금에서 제외해서 사용자들은 각종 법정수당을 지급했다. 이에 많은 노동자들이 통상임금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각급 법원에서 재직자조건, 일정근무일수조건의 상여금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번번이 노동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예외적으로 몇몇 법원에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세아베스틸사건에 관한 서울고등법원판결이었다. 세아베스틸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부에 회부됐다. 이 세아베스틸사건의 원고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나는 그동안 세아베스틸사건에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통상임금에 관한 판례 법리를 새롭게 정리하게 될 것이라고 여기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화생명보험사건과 현대자동차사건을 통해서 대법원은 정리한 것이다. 어떤 사건이든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징표에서 제외시킨 것이니 나는 감동이고, 환영한다.
4.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렇게 내가 감동이고, 환영이라고 한 데 대해서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찌 불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사실 나도 불만은 있다. 대법원 판결 직후 현대자동차사건의 원고 노동자 강봉0도 승리했다고 기뻐하면서도 그랬다. 원고 강봉0은 자신이 근무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 모두가 자신과 같이 청구해서 추가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통상임금 법리는 소송 중인 사건을 제외하고는 판결 선고 이후부터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이미 통상임금소송을 하고 있지 않았던 노동자들은 재직자조건, 일정근무일수조건의 상여금 등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추가 법정수당 등 임금 지급을 청구할 수 없게 됐다. 사용자측 사정을 고려해 대법원이 이런 절충적 판결을 한 것에 대해는 원고 강봉0도 나도 불만이다. 그동안 많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세아베스틸사건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아베스틸사건에 관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기다리면서 소송하지 않고 있었던 것인데, 졸지에 소용없게 돼버렸다. 괜히 기다렸다가 청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무리 전원일치로 고정성을 통상임금 개념징표에서 제외시킨 의미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해도 자신의 임금청구권을 상실하게 된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는 장래에 적용받는 것이라 해도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이렇게 통상임금에 관한 2024년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소감을 말하다 보니 정말 아쉽다. 11년 전에 대법원이 이런 판결을 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불만은 없었을 것일 텐데 유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