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

안전신문고에 건설현장의 위험상황을 신고한 건설노동자가 경찰로부터 출석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심지어 경찰은 영등포구청으로부터 1년1개월 치 안전신문고 민원인 전체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민원 정보 등을 제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국가인권위원회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진정을 접수했지만 인권위마저 이를 기각 및 각하했다는 사실이다.

한꺼번에 많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사건이다. 이 건설노동자는 왜 경찰의 조사 대상이 됐던 것일까. 영등포구청은 왜 민원인의 정보를 통째로 경찰에 넘겨주었을까. 그리고 이것이 정말 아무 문제도 없는 사법과 행정이란 말인가. 해당 건설노동자는 2022년 4월 영등포세무서청사와 어린이집 공사현장에서 가스통 미분리, 폐콘크리트 방치, 추락방지망 미설치 등의 위험 상황을 신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과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서, 나아가서는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 한 일이었다. 법적으로도 산업안전보건법, 고압가스 안전관리법(고압가스법), 건설폐기물의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건설폐기물법)을 명확히 위반한 사안들이었다. 그렇다면 심술이 난 건설업자가 무고죄로 고소라도 했던 것일지 생각했지만, 1년 넘게 지난 2023년 10월에야 이 노동자에게 연락한 경찰에 따르면 출석요구의 목적은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와 관련한 조사라 했다고 한다.

사실 안전 문제를 신고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본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용기를 내는 이들이 사적인 보복 혹은 공적인 불이익을 받아왔다. 유해화학물질이 유출되는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는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았고, 조합원의 산재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작업영상을 촬영한 노조 간부는 무단촬영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공익제보자들이 제보의 내용이 기밀이나 영업비밀이라며, 그것을 유출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아온 모순된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때로는 신고자 혹은 공익제보자의 신분이 노출돼 보복당한 사례들도 익숙한 레파토리다. 대부분 공익제보자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행정기관이 신고자나 제보자의 정보를 유출해 벌어진 일들이었다.

이 건설노동자가 결국 수사를 받거나 처벌을 당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앞서 나열한 많은 사례와는 다른 차원의 심각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신고자에 대한 파악이 신고를 당한 사업주의 의지가 아니라 사법기관의 의지에 의해 시작됐다는 점이다. 경찰은 특정한 고소·고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건설노동자의 안전신고를 ‘협박’으로 규정하고 신고자 ‘색출’에 나선 것이다. 해당 노동자가 경찰의 전화를 받은 지난해 10월이 어떤 시기였는지 돌아보자. 정부는 2월부터 ‘건폭’이라는 단어를 띄우며 건설노조 죽이기에 열을 올렸고, 5월 양회동 열사가 이에 항의하며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탄압은 멈추지 않았고 전국에서 건설노동자 수사, 구속 광풍이 이어졌다. 영등포경찰서의 전화 역시 윤석열의 광기 어린 건설노조 탄압이 그 배경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비상식이다. 둘째, 신고자의 개인정보 유출이 실수나 부주의가 아니라 구청의 공식적인 결정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특정 기간의 모든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달라는 경찰의 무분별한 요구가 아무런 제한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자기 주민등록등본을 뗄 때조차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선택한 사람만 표시해 주는 국가에서 말이다.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수사’라는 이유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은 역시나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만천하에 윤석열의 무도함이 드러났다. 반란과 탄핵에 비하면 너무도 소소한 사건일지 모르지만, 뒤늦게 드러난 이 사건에도 그 무도함의 그림자가 노동현장 곳곳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음에 새삼 놀란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세계를 살고 있었던 것인가. 대통령이 원하는 수사라면 안전도, 인권도 깔아뭉개고 폭주하는 세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고, 만나서도 안 될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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