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화제다. 김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에 참여했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김 의원 포함 단 3명만 투표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김 의원을 단독 인터뷰했다. 인터뷰 영상은 공개 10시간 만에 130만 조회수를 넘겼다. 페이스북엔 투표하러 가는 김 의원 사진에 ‘김예지 그녀는 시각장애인이지만 그녀만이 눈을 뜨고 있다’는 글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김 의원은 계엄 당일엔 국회 월담까지 시도했다.
2022년 3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동권 시위를 벌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맹비난했다. 이때도 김예지 의원은 자기 당 대표와 달리 전장연의 이동권 시위에 참여했다. 한겨레신문은 그해 3월 27일 “이준석 ‘볼모’에 놀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이동권 시위’ 참여한다”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에서 김 의원을 인터뷰했다. 한겨레는 이 기사 작은 제목에 김 의원을 ‘첫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했다.
‘최초’라면 물불 안 가리는 우리 언론의 고질병이 도졌다. 최초의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정화원 의원이다.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작은 제목을 달았다. 기사 본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나오지도 않는다. 김 의원이 ‘첫 시각장애인 의원’이라서 이동권 시위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기사는 지금은 한겨레 홈페이지에 ‘첫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라고 고쳐졌다. 여전히 ‘최초’에 목을 맨다.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때도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숫자를 마구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4일 낮 2시47분에 올린 “45년 만에 비상계엄인데 재난문자 ‘조용’ … 왜?”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에서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비상계엄은 9회 발동됐다”고 썼다. 반면 동아일보는 4일 새벽 3시2분에 올린 “박정희 서거 때 이후 45년 만의 비상계엄”란 온라인 기사에서 “정부 수립 이후 이날까지 총 13번의 비상계엄령이 발동됐다”고 썼다. 9번(조선일보)과 13번(동아일보) 중에 동아일보가 맞다.
우리 언론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때 사망자 수를 하루 이틀 만에 특정했다. 반면에 2001년 9·11테러 때 미국 언론은 사망자 수를 무려 6개월이나 지나서야 확정했다.
‘최초’나 ‘숫자’에 목을 매는 건 우리 언론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이다. 오랜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한 한국 언론은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피해자 숫자’라도 챙겨야 한다는 강박이 강하다. 여기에 ‘빨리빨리’ 문화까지 겹쳤다.
몇 명이 죽었고, 몇 명이 다쳤느냐는 숫자놀음보다는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접근하길 포기한 기자들이 비본질인 숫자에 목을 맨다.
김예지 의원이 최초의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라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아니다. 이렇게 엉뚱한 곳에 매몰되면 꼭 엉터리 숫자로 망신살이 뻗친다. 아니면 숫자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끝나기 십상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