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아들과 식사하다 깜짝 놀랄 얘기를 들었다. 지난 3일 밤과 4일 새벽 계엄 해제를 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국회라는 존재에 고마움을 느꼈다는 거다. 그럴 만도 한 게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의원은 항상 인기가 없었고, ‘놀고 먹는’ 집단 취급을 받기 일쑤였지 않은가. 그런 국회의원, 더 정확하게는 정치인은 청소년에게 비아냥 대상이었겠다.
미래세대에게 이번 국회는 매우 고마운 존재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 해제를 위해 노력해 줘서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을 청소년 입을 통해 듣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론에 항상 민감한 필자는 이 같은 큰 인식 변화가 앞으로 여론을 어떻게 움직여 정치를 어떻게 바꿀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한 미래세대가 기억하게 될 내용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과연 계엄 해제 과정에서 어느 당 국회의원이 참여했는지를 생각할 거 같은데, 국민의힘이 의석수 대비 참여율이 저조했다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다른 정당 의원들도 이름을 올리는 등 일단 집합적으로 국회가 제 역할을 했다고 기억할 것 같다. 그 다음 기억은 뻔히 현재 우리 모두 언론을 통해, 현장에 가서 보고 듣고 있는 국민의 함성일 것 같다. 그리고 앞다퉈 내란죄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 공수처의 수사결과 발표가 되겠다.
그 과정에서 7일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과정은 청년뿐 아니라 청소년에게도 매우 인상적이었을 것 같다. 피로에 지쳐 눈도 겨우 뜨고 있는 것 같은 국회의장이 “제발 투표에 참여해 달라”고 준엄하게 수차례 외쳤으나, 대다수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밤 9시20분까지 기다리던 국회 주변 시민들도, TV를 통해 지켜보던 국민들도 답답했을 것 같다. 탄핵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절차에 따라 부결에 표를 행사하면 될 일 아니겠는가.
국민의힘이 다수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국민의힘이 집단적으로 절차를 무시하고 보이콧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청년과 청소년 등 미래세대는 어떤 기억을 갖게 될까. ‘계엄 해제를 위해 노력한 국회’에서 국민의힘을 제외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면 계엄 해제에 대한 고마움 대상에서 제외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다수였으면 계엄은 해제되지 못 했겠구나 하는 인식으로 이어지게 될 거다.
그러면 당장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와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처음 투표권을 갖는 지금 청소년과 청년 세대는 어느 당을 반대하고 어느 당에 호감을 느낄까. ‘국민의힘이 다수였다면’이라는 우려감을 과연 씻을 수 있을까. 또 다른 당명으로 바꾼다고 지난 주말의 국회를 봤던 국민의 인식에서 의총장에 모여 있던 국민의힘 의원들을 잊을 수 있을까.
이렇게 ‘다수가 되면 위험한’ 정당으로 인식된다는 건, 사실 개별 유권자의 투표 행동에 영향이 크다고 본다. 왜냐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를 두고 효능감을 얻는 방향을 선택하기보다는 최악의 위험은 회피하는 방향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다수로 만들 수 없다는 인식은 대통령선거뿐 아니라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총선거 등에서 더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
탄핵트라우마 발생 원인
필자는 여기에서 한가지 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권에서 흔히 말하는 탄핵트라우마가 발생한 원인과 극복 방안이다. 2016년 국정농단과 촛불시위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그 과정에서 초반에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양강 구도인 것 같았는데, 나중에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던 보수 지지자가 홍준표 후보로 이동하면서 일강다약(一强多弱)구도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결국 문재인 후보가 당선을 거머쥐었다.
모두 알다시피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민주당 계열 정당의 역사에서 가장 큰 대승이었고,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고강도 방역 속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역대급 다수 의석을 얻어 승리했다. 세 번의 큰 선거에서 보수 정당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그 원인이 탄핵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탄핵에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사태가 그 정도로 악화됐을 때, 사실 탄핵을 주도하는 세력이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왜 모르고 있었는가. 아니 왜 모른 척 외면했는가의 문제다. 결국,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긍정률이 5%까지 하락(한국갤럽)한 11월 1주 후 5주 동안 다섯 차례의 여론조사 모두에서 박 전 대통령 국정 긍정률은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적 촛불 열기는 추운 겨울에도 식을 줄 몰랐고, 시위 인원은 200만명이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등은 떠밀려 표결에 참여하고 찬반이 나뉘어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2017년 2월 당명을 바꿔 대선을 준비했다.
자, 만약 당시 새누리당이 탄핵을 주도했다면 어땠을까.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고 할 게 아니고, 자당 출신 대통령이 문제가 있다고 하니 먼저 탄핵을 하겠다고 나섰다면 오히려 대통령선거에서 더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었고, 탄핵트라우마를 겪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권위주의체제는 다시 등장할 수 없다
사실 그러려면,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 어떤 원칙이 있어야 했을 것도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필자는 그게 군부통치 권위주의 시대로 다시 퇴행할 수는 없다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라고 본다. 격렬한 민주화운동으로 군부통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난 후 그 어느 누구도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은 없었던 것 같다.
과거로 퇴행하자고 하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것은 국민의 정치의식이 그만큼 성숙해, 어떠한 권위주의적 통치행태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너무나 분명한 국민의식에 저항하고, 계엄 시도를 덮으려는 왜곡된 질서 강박은 오히려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넣을 뿐이다.
이미 2030세대뿐 아니라 40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국정 긍정률은 한 자릿수다. 이것도 한국갤럽의 3일간 조사 중 계엄령 포고 전 하루를 포함해 평균 낸 결과다. 3일 평균 전체 16%의 긍정률인데, 계엄령 사태 후 2일만 평균을 내면 13%라고 하니, 203040 세대의 국정 긍정률은 더 정말 바닥 수준이 아니겠는가.
다음 선거에서 생애 첫 투표자에게는 지금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탄핵트라우마에 또 다시 갇힐지는 오로지 국민의힘 의원들을 포함한 정치인 개인의 몫이다.
메타보이스(주) 부대표 (bongshinkim@naver.com)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605호 2024년 12월 1주: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2024년 12월 3~5일,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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