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지난 7일 본회의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되면서 ‘탄핵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이 아닌 ‘질서 있는 퇴진’으로 가닥을 잡은 여당은 시간벌기에 성공했지만 앞으로 새 원내대표 선출 등 당내 인선과 ‘퇴진 로드맵’ 마련 과정에서 내부 진통이 전망된다. 야당은 임시국회를 일주일 단위로 쪼개 열어 매주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붙일 계획이다. 윤 대통령 이후의 주도권을 놓고 여야의 다툼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피의자 된 윤 대통령, 실권 잃나
검찰은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인 상태다. 박세현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은 8일 오후 언론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냐’는 질문에 “관련 고발장이 많이 접수돼 절차에 따라 수사 중”이라며 “고발이나 고소가 이뤄지면 절차상으로는 (윤 대통령은 피의자가) 맞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후 나흘 만에 “임기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내란 혐의 피의자로 수사까지 받으면 사실상 국정운영에 나서긴 힘든 상태라는 진단이 나온다. 9일 예정된 윤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주례회동은 취소됐다. 대신 한 총리는 이날 비공개로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고 국무위원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국정은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하고 국민의 삶은 지켜져야 한다”며 “전 내각은 정부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국정에 한 치의 공백도 발생하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정운영의 빈자리는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가 메우겠다고 나섰다. 이날 오전 한 대표는 한 총리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은 퇴진 전이라도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내 논의를 거쳐 조기 퇴진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퇴진 전까지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밝혔다.
‘질서 있는 퇴진’ 성공할까
한동훈·한덕수 법적 권한 논란
야당은 여당의 질서 있는 퇴진 주장과 한 대표의 국정운영 개입 계획 발표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날 오전 탄핵추진위원회 회의에서 “(한 대표는) 민주적 절차로 국민에게서 국정 운영 권한을 위임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총리와 함께 대통령을 대신하나”라며 “그 자체로 위헌이고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이날 오후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국민은 윤석열을 대통령을 뽑았지, 여당을 대통령으로 뽑은 일이 없다”며 “대통령이 유고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잠시 2선 후퇴를 시키고 대통령 권한을 총리와 여당 대표가 함께 행사하겠다는 해괴망측한 공식 발표를 어떻게 할 수 있나”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대표에 같은날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한 여야 회담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우 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 대표에 “헌법에 없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라”며 “대통령의 직무를 즉각 중단시키고 현재의 불안정한 국가적 사태 해결을 위해 여야 회담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야당은 임시국회가 개원하는 11일 탄핵소추안을 재발의하고 14일 본회의에서 투표하겠다는 계획이다. 야당은 매주 토요일마다 표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10일 정기국회가 종료되면 임시국회를 일주일 단위로 여는 방식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안건이 부결되면 같은 회기에는 재발의할 수 없다.
이 대표는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를 탄핵소추안 가결 시한으로 약속했다. 매주 탄핵소추안이 상정되고, 여당이 응하지 않아 불성립하는 장면이 반복되면 탄핵소추안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여론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국회 밖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원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국민의힘 의원들이 느끼게 된다면 표결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당장 14일은 어려울 수 있어도 21일은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매주 탄핵소추 투표’ 야당, 여론 유지 관건
한동훈 대표 당 장악, 가시밭길일 수도
이날 한 대표의 국정운영 개입 선언은 윤 대통령이 자리를 내려놓을 때까지 국정운영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으로, 한 대표의 대권 도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탄핵소추안 표결 불성립 이후 여당은 언론 대응을 피하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7일 본회의를 마치고 국회 뒷문으로 떠났고, 이날 한 대표도 대국민담화 이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여당 입장에서는 7일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에 찬성하거나 투표에 참여했을 경우 리스크가 컸다. 비상계엄에 대한 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권당이 야당의 흐름에 따라 대통령 탄핵에 동참한다는 부담이 있고, 윤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여당 내 대안으로 세울 인물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공존했다. 이날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면 앞으로의 정국은 야당을 중심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크다. 야당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갈 수 있는 상황에서 친한(친한동훈)계도 쏟아질 여당 내 비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추 원내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며 한 대표가 여당 내부를 장악할 가능성이 커졌지만,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의 방법이나 시일 등 수습책뿐 아니라 차기 원내지도부 구성을 두고 여당 계파 간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추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한 7일에도 친윤계 권성동 의원이 추 원내대표 재신임을 다시 의원총회 안건으로 올리자 친한계 의원 일부가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의 정치 욕심도 변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매일노동뉴스>에 “추 원내대표가 물러나면 국민의힘은 한 대표를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는데 한 대표가 당을 끌어안고 정치를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가 관건”이라며 “만약 (당을 고려하지 않고) 혼자 정치를 한다면 코너에 몰릴 것이고, 수습 방안을 놓고 국민의힘은 사분오열할 수 있다. 그렇게 여권이 혼란에 빠지면 야당이 제시하는 탄핵소추안이 통과할 수도 있다”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