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기후위기로 인한 역대급 폭염이 지났다. 폭염이란 위험에 노출된 많은 노동자는 작업중지 등 스스로를, 동료를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건당 수수료 체계, 어떻게든 채워야 하는 생산량, 노조로의 조직화 부족, 불안정 고용 등 이미 산재한 악조건들이 작동한 결과였다. 노동부는 물·그늘·휴식을 얘기했지만, 자율규제라는 명목으로 감독역할을 잘 수행하지 않(못)았고, 올 한 해만 논밭을 비롯한 작업장에서 2천여명이 온열질환으로 쓰러졌다.

2020년 12월20일 난방시설조차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잠자던 이주노동자 속헹님이 사망했다. 속헹님의 죽음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는 구호를 사회적으로 촉발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은행잎이 물들 여지조차 주지 않은 채 기후위기로 인한 폭설과 추위가 성큼 다가왔다. ‘역대급’이라는 이름의 예측 불가능한 재난 상황은 더욱 심해지고 있지만, 집이 아닌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를 숙소로 삼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쌓인 눈으로 인해 비닐하우스의 지붕이 무너지는가 하면, 살을 에는 찬바람을 막지 못해 온기를 채우지 못하는 부실한 벽과 천장, 조금만 기온이 떨어져도 얼어버리는 열악한 상·하수도, 얼기설기 엮여 눈과 비에 누전 및 화재의 위험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배선, 화재 등 사고가 벌어져도 가로막으며 접근을 어렵게 하는 열악한 도로 등 주변 기반시설 등 산적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부실한 조립식 패널 건물 등 숙소라 칭할 수 없는 곳에서 겨울을 나게 할 것인가?”(경기이주평등연대가 이주노동자 혹한기 숙소 대책을 촉구하며 올해 12월3일 진행한 기자회견문 일부)

고용노동부는 옷·물·쉼터를 내세운 한랭질환 예방가이드를 배포하고, 취약 사업장에 대한 자율점검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이들이 배포한 한랭질환 예방 자율점검표 항목을 보면 여러 겹의 옷과 두건·마스크 등을 착용했는지, 따뜻한 물과 휴게시설을 제공했는지, 한파 특보시 옥외작업을 최소화했는지, 가이드를 노동자가 잘 볼 수 있게 게시했는지 정도를 표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혹한기 노동에 대한 노동자 작업중지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다수의 이주노동자가 숙소로 삼고 있는 열악한 주거환경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위험 상황을 조장·방치한 사업주를 어떻게 계도·처벌할 것인지 등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다.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 가설건축물은 주거용이 아니지만, 이주노동자 다수가 그러한 환경에 놓여 있다면 우선 필요한 것은 구체적 실태 파악과 실질적 개선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이러한 가설건축물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가 앞장서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현 사업장 및 숙소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감독 역시 필요하다.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 상황에서의 작업중지를 노동자의 권리이자 사업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눈이 쌓여 작업장이 무너질 것 같을 때, 밀폐된 공간에서 추위 때문에 켠 가스가 위험요인으로 작동할 때, 적절한 보호구가 지급되지 않아 몸을 잘 움직일 수 없을 때 등의 조건은 사업주가 관리·예방해야 하는 위험 상황이다. 노동부는 사업장별로 특징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율규제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사업주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로 작동하면 안 된다. 사업장별로 특징이 다르다면 그 특징에 맞게 사업주가 사업장 온도나 습도 등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온열이나 한랭질환 예방을 위한 자체 규정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해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안전보건 조치를 수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10월 강원도 평창에서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비닐하우스에서 석유 가스를 켜고 자다가 가스중독으로 이주노동자 2명이 사망했다. 예방할 수 있었던, 예상할 수 있었던 죽음은 반복되고 있다. 지자체 예산을 늘려 기존 숙박시설을 임대해 이주노동자 숙소로 지급하라는 요구, 공공기숙사를 확대하라는 요구 등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미비하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기후위기란 재난 상황 속,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업주의 의무 수행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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